-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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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나의 우화를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았다.“ - Jean Rousselot
밤새 쏟아지던 비가 잠시 그친 아침,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을 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마음에 드는 창가 자리로 향했습니다. 비에 젖어 먹먹한 회사 옆 공원의 풍경이 보이는 그 곳에 앉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깐 동안의 고요함을 즐겨봅니다.
저는 요즘 자신의 길을 무언인지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아직 끝이 어디인지 도무지 보이진 않지만, 이 길을 계속 따라가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아주 어렴풋이, 아주 막연히 이 길이 제가 가야만 하는 길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 어느 전시회의 팜플렛에서 보았던 짧은 시구가 떠오릅니다.
자아는 해변 없는 바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시작과 끝이 없다
여기에서나 다음 세상에서도 *
진정한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또 한편으론 어렵기 그지 없는 일인 듯 합니다. 니체도 이렇게 말했죠. “우리가 우리 영혼의 구조와 일치하는 건축물을 개략적으로 구축하고자 한다면 ... 그 구조를 미로에 따라 구상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영혼의 미로 속을 헤매며 자신 안의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 듯 합니다. 어쩌면 끝이 정해진 삶 동안에는 결코 해변에 가 닿을 수 없는 불가능한 항해를 시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눈 앞에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조금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일단 자신의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 답은 이미 자신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거대한 사과나무를 품고 있는 작은 씨앗처럼, 태어나는 순간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함을 알고 있는 어린 연어처럼, 자신만의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 당신의 세계는 이미 당신의 영혼 안에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네요. 온 세상이 ‘잠자는 물’처럼 고요하게 출렁이는 아침입니다. 노발리스는 말합니다. "모든 실질적인 시작은 두 번째 순간이다.' 모두들, 자신의 우화를 다시 발견하는 소중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서툰 편지를 줄입니다.
*이븐 알아라비 (1165 - 1240)
(2008년 7월 24일, 서른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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