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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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별과 같다. 수없이 많지만 하나하나가 모두 작은 우주다." - 구본형
인천 송도에서 열린 펜타포트 락 페스티발을 다녀왔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혈기 넘치는 젊음들과 함께 음악의 향연을 즐겼습니다. 거친 기타 연주와 쿵쾅거리는 드럼 비트에 몸을 잠시 내맡겨 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생은 참으로 황홀한 것입니다. 제가 조금 흥분했는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니자, 같이 간 친구가 제게 '바둑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유가 그럴 듯 합니다. 호기심이 많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밥 때가 되면 집에는 꼭 다시 돌아오니 말입니다. 모두 한바탕, 신나게 웃어 젖혔습니다.
어느덧 해는 저물어가고, 잠시 간이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제 목덜미로 한줄기 시원한 저녁 바람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렇게 뒤에 앉아 공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젊음이란 참 좋은 것이네요. 저렇게 마구 날뛰고 흩뿌리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 청춘인가 봅니다.
사방에 어둠이 내리고 조명이 점점 밝아지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쳐갑니다. 바람은 지나가게 마련이구나. 해는 지기 마련이구나. 이 찬란한 젊음들도 페스티발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삶의 무게를 견뎌내야겠구나.
그리고 그 생각의 틈새로 솔직한 욕망 하나가 꿈틀거리며 치솟았습니다. 나는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구나.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흔하디 흔한 돌멩이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구나. 저렇게 허공에 흩뿌리는 젊음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되고 싶구나.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내가 아름다운 별이 되어야겠구나.
이제 전 제게 주어진 젊음에 고삐를 채워야겠습니다. 저 너른 들판을 마음껏 내달리기 위해선 아프더라도, 괴롭더라도 제 생에 재갈을 물려야 할 때입니다. 지금 생의 주도권을 잡지 못한다면 바닥에 떨어지는 땀방울처럼 이리 저리 흩어지다 끝이 날 테니까요. 바람이 지나가고, 해가 진 그 곳에 서서 막막한 허망함을 온 몸으로 견뎌내야 할테니까요.
어둠이 내린 펜타포트 공연장에 카사비안의 'Shoot the runner'가 울려퍼집니다. 저는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출렁이는 음악의 물결 속에 몸을 맡깁니다. 뜨거운 용암처럼 축제의 밤이 깊어갑니다.
(2008년 7월 31일, 서른 한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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