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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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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 수 0
2008년 8월 14일 03시 44분 등록



"인생과 일에 있어 가장 큰 흥미는 바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로 변화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만약 책을 쓰기 시작할 때 결론에서 무엇을 말하게 될지를 안다면 여러분은 과연 그 책을 쓸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미셸 푸코, 미국 버몬트 대학에서의 인터뷰 中


기억 속의 섬진강이 그리웠습니다. 10대 때, 집을 나와 동네 친구와 함께 걷던 찬란한 봄날의 섬진강. 20대 때, 남해로 훈련을 가는 도중 군용차가 고장나 수리를 기다리는 어느 다리 아래에서 바라보던 고요한 섬진강... 그 기억 속의 섬진강을 찾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한 여름에 찾아간 섬진강은 아름다운 기억 속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풀숲은 우거지고, 물은 생각처럼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장소를 잘못 선택한 탓인지 기억 속의 하얀 모래밭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대로 발걸음을 돌릴 순 없기에 우거진 풀숲을 헤치며 뜨거운 햇살 속을 걸었습니다.

두 대의 자전거를 길가에 세워놓은 채 강바닥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 강 한가운데에 잠시 앉았습니다. 신발을 벗고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갔습니다. 그늘이 없어 오래 앉아 있을 순 없었지만 다시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돌아가려고 일어서는 순간에 생겼습니다.

건너올 때는 몰랐는데, 잠시 쉬고 나니 바위와 징검다리 사이의 간격이 제법 넓습니다. 그냥 물 속으로 걸어서 지나가려 해도 바위에 이끼가 끼어 미끄럽습니다. 맨 몸이면 넘어진다 해도 큰 상관이 없지만, 가방 안에 들어있는 카메라가 물에 젖을까 걱정입니다.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잠시 낑낑대다 결국 간격을 뛰어 건너기로 했습니다.

햇살이 닿아 물이끼가 끼지 않은 곳을 발 디딤판으로 가늠해 봅니다. 툭툭, 발 끝으로 디딜 곳을 몇 번 밟아본 뒤 드디어 뛰었습니다. 휴… 다행히 무사히 건넜습니다. 건너뛴 곳을 돌아보니, 방금 전까지 무척 심각했던 문제가 참 사소하게 느껴집니다. 땡볕 아래서 혼자 쇼를 한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여름의 섬진강변을 다시 걸어서 돌아왔습니다. 아련한 기억과 생생한 현실은 참 다른 것인가 봅니다. 상상과 현실 또한 마찬가지겠죠.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현실에 맞닥뜨리면 우린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서 모험이 즐겁습니다. 인생이 즐겁습니다. 이미 모든 답을 알고 있다면 산다는 건 얼마나 재미없는 노릇일까요.

그러니 정답을 모른다고 해도 미리 걱정하진 마세요. 그냥 그 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보세요. 혹 문제가 생겼더라도 너무 당황하진 마세요. 그 현실의 문제들은 우리를 더욱 단련시켜줄 소중한 기회들입니다. 현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더라면, 그저 몽상으로 사그라졌을 상상들을 구체화시켜줄 아름다운 실험들입니다. 우리 존재의 지평은 그 '생생한 경험'을 통해서 더욱 확장되어 나갑니다.



@ 김도윤 연구원이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되어, 그가 쓴 글을 대신 보냅니다. 답장을 보내시는 분들은 참고하십시오. (박승오 드림)



(2008년 8월 14일, 서른 세번째 편지)


IP *.189.2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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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pson
2008.08.14 23:35:02 *.60.237.51
한여름의 섬진강을 여러번 머리에 그려보았습니다. 직접 보는 섬진강은 나에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네요. 좋은 글,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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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ofeel
2008.09.07 18:43:43 *.77.113.22
멋진 글 담아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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