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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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저는 화려한 장미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한번 사는 인생이기에 찬란히 꽃을 피우며 뽐내듯 살아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늘 목표에 의해 움직였고,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실용서적을 많이 읽었고, 효율적이지 못한 것들을 끊어버렸습니다. 저는 대단히 성취지향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구본형 선생님을 만나고 인문학 서적들을 읽게 되면서, 세속적 성공의 부질없음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자유가 돈으로 살수 있는 것이 아님을, 존경을 명예로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풍요롭게 살기보단 풍성하게 살리라 다짐했습니다.
무화과(無花果) 나무에는 글자 그대로 꽃이 없다. 사실, 꽃이 있는데 작은 주머니처럼 생긴 꽃받침 속에 숨겨져 있어 사람들은 안쪽의 수많은 꽃들을 볼 수 없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저는 무화과 나무처럼 살겠다 약속했습니다. 화려하게 뽐내지 않고 조용하게 내면에서 은밀히 피어난 꽃을 자축하며 단단한 열매를 만드는 나무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돈이 부족하여 가난해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존재를 찾기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을 자주 쳐다보게 되었고, 해와 달과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높이 뻗은 가지들이 어떻게 서로를 배려하는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대와 30대의 경계에 선 제게 그것은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길고 긴 슬럼프가 시작되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앓기 시작한 우울증세가 그치질 않았습니다. 참 많이 울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저를 더욱 깊은 늪 속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러다 몇일 전 울산에서 올라온 한 꿈벗의 경험담이 우울의 원인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옛 편지를 뒤늦게나마 떠올렸습니다. 스승은 말했습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열매도 없다. 두 가지 일 모두 나무가 애써서 해 내는 일이다. 많은 것들을 함께 담고 있으니 그것들이 어울려 서로 돕게 해라.”
제자는 이제 압니다. 20대의 어리석음에 대한 반발로 저울의 가운데를 지나 너무 많이 갔던 것을. 인생을 달관하고 미련을 버린 듯 보였지만, 사실은 내면 깊은 곳에서 성공하기를 열망하고 있었던 것을. 삶과 존재에 집중하는 것처럼 흉내 내었지만 돈과 명예를 힐끗 바라보며 한없이 한숨을 짓고 있었던 것을. ‘어설픈 초월’을 한 애늙은이.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제 모습이었습니다. 표리부동(表裏不同)! 그것이 제 기나긴 슬럼프의 원인이었습니다.
화려한 성공만을 바라는 속물이 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바닥을 딛지 않은 채 허공에 발길질을 하는 몽상가가 되지도 않겠습니다. 머리엔 현실을, 가슴엔 이상을, 발은 오늘이라는 땅에 철석 붙이고 아름다운 성공을 향해 달리겠습니다. 봄에 화려하게 피어 하얗게 세상을 수놓았다가 가을에 주렁주렁 황금빛의 열매를 다는 배나무처럼, 꽃과 열매, 밥과 존재, 성공과 성숙을 고루 추구하는 현실적 이상주의자로 인생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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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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