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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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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25일 19시 12분 등록

세수대야를 찾았어요. 화장실로 가지고 가서 샤워기를 틀고 아주 깨끗하게 박박 문질러 닦았습니다. 그리고는 약간 더운 물을 받았습니다. 물이 차는 동안 수건을 킁킁 냄새 맡아보고 가장 향기가 좋은 것으로 골라 허리 춤에 찼어요. 비누 통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이제 물이 찰랑거리는 대야를 가지고 가서 소파 아래에 세수대야를 놓습니다. 안방에 계신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눈이 휘둥그래진 채 가만히 서 있습니다. 아마도 눈치를 조금 채신 모양이에요.
“아버지, 이리로 잠시만 오시겠어요?“
“왜 그러니?”
“…그냥이요……”
“혹시 발 닦아 주려고 그러니..? 아아, 됐다 녀석아.”
“아빠, 그냥 오세요. 결심한 아들 민망하지 않게 해주세요..”

아들의 손에 끌려 못이기는 척 아버지는 소파에 앉습니다. 아들은 그 아래에 양반다리로 앉고, 무릎에 수건을 깔아놓습니다. 아버지의 양말을 부드럽게 하나씩 벗기고 발을 두 손으로 꽉 잡아 물에 조금씩 잠기게 합니다. 물이 따뜻합니다. 손과 발이 미끄러지듯 엉키며 살랑살랑 물결을 만들어냅니다. 거품을 내어 아버지의 왼쪽 발에 부드럽게 묻힙니다. 발가락 사이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미끄러지듯 깍지를 끼자 발가락이 펼쳐집니다.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김과 퍼지는 꽃 향기의 비누 냄새에 기분이 좋습니다.

‘아버지, 이번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서 명상을 하다가 아버지의 소리치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어렸을 적 아버지의 화를 내시던 모습에 항상 가슴이 조마조마 했었나 봐요.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더 이상 제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말씀 드리는 거에요.’

이렇게 말씀 드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손에 아버지의 발바닥이 닿았습니다. 아버지의 발바닥은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습니다. 복사뼈 부위도 굳은 살이 까맣게 겹겹이 쌓여 사람 피부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이 닿았는지 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아들은 속으로 눈물을 참으며,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고개를 숙였을 뿐입니다.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허공만 바라봅니다. 둘 다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러나 참 편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늘 퇴근길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발을 어루만져 주리라 다짐하세요. 그리고 돌아오는 추석에는 부모님의 발을 닦아 드리세요. 생각보다 부끄럽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가슴 아프고, 가슴 벅찬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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