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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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란 기지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을 말한다.” - 조셉 캠벨
밤이었습니다. 저는 태안의 어느 모래사장을 걷고 있었습니다. 노래 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로 시끌벅적한 숙소를 떠나, 썰물이 빠져 나간 긴 모래 사장을 걸어 바다에 다다랐습니다. 신발을 벗고 잔잔한 수면에 발을 담갔습니다.
찰랑거리는 파도의 감촉을 느끼며, 부드러운 모래를 발 끝으로 느끼며 어둠 속의 바다를 걸어보았습니다. 늘 익숙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닌, 청각과 촉각 만으로 소리와 감촉의 세계에 연결돼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렇게 어둠 속의 바다 산책을 즐겼습니다.
아주 완만한 경사의 해안이라 한참을 걸어도 겨우 무릎까지 물이 차 올라왔을 뿐이지만, 어두운 바다를 계속 걷다 보니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나 봅니다. 몸을 돌려 제가 떠나온 해안가를 바라봅니다. 저 멀리 화려한 조명과 가로등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익숙하고, 그리운 세상입니다. 그렇게 바다와 육지 사이를 서성이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익숙하기 때문에, 혹은 바다가 두렵기 때문에 육지에 머무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합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현명한 선택을 뒷받침해주는 이유들은 끝도 없이 생겨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 그리고 은행 잔고와 마이너스 통장... 결국 대부분은 어딘가로 떠나보지도 못한 채, 삶의 어둠을 맞이합니다.
물론 인생의 무게를 무시할 순 없습니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기 전, 만반의 준비 또한 중요합니다. 그러나 ‘계속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결국 나를 버리는 것이다’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다가왔다면, 그 보이지 않는 인생의 경계선을 만났다면, 비록 완전한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도 떠나야 합니다. 익숙한 세상을 떠나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낯선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깜깜한 밤 바다를 거닐다 보니, 제가 너무 진지해졌나 봅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새로운 시작을 꿈꾸던 한 선배와의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릅니다. 그는 무언가가 시작되기 전의, 긴장된 표정으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며칠 전에 여행기를 한 권 읽었어.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한 구절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돌아. 정확하지 않지만 이런 문장이야. 단 한 번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사는 것, 그것이 인생에 대한 예의이다.”
(2008년 9월 11일, 서른 일곱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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