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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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엔 문이 있다.” - 윌리엄 블레이크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난 지난 일요일, 작은 방의 책장을 정리했습니다. 두서없이 쌓여만 가던 책들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재배열했습니다. 그리 많은 책은 아니지만, 책장을 정리하기 위해 들추다 보니 곳곳에 숨어 있던 책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순간적인 호기심에 집어 들었던 책, 언젠가는 필요하겠지, 하며 사두었던 책, 선뜩 펼쳐 들기가 어려운 두꺼운 책, 열심히 읽다 깜박 잊었는지 중간에 연필이 끼워져 있는 책도 있습니다. 그렇게 잠들어 있던 책들을 다시금 들추다 보니 꼭 현재의 제 삶을 되돌아 보는 듯 합니다.
책장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책은 현재의 직업과 연관된 실용 서적들로 브랜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관련 서적입니다. 또 한 켠은 제 관심사이자 현재 공부하고 있는 전공과 연관이 있는 영상과 디자인 책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몇 권의 시집들과 사진 책, 여행 관련 서적, 틈틈히 꽂혀 있는 동화책과 만화 책도 눈에 띕니다.
그런데 지금부터가 조금 어렵습니다. 작년,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모으기 시작한 책들이 책장의 절반 이상을 훌쩍 넘어서기 시작했는데, 이 녀석들의 분류가 만만치가 않네요. 우선 올해부터 제가 탐구하기로 했던 주제에 맞추어 구분해 보기로 했습니다. 포스트 잇을 붙이며 레고를 조립하듯 책의 위치를 재구성하다 보니, 작년과 올해 제가 빠져들었던 작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부님의 책, 미셸 투르니에, 존 버거, 조셉 캠벨, 신영복 선생님, 자크 아탈리, 니체, 가스통 바슐라르... 그리고 꼭 가야 하는데, 아직 가지 못한 길들도 어렴풋이 드러납니다. 발터 벤야민, 질 들뢰즈, 미셸 푸코, 베르그손, 노자, 장자, 주역... 마치 미로처럼 얽혀있는 책 속의 수많은 갈래길들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란 단편을 떠올리게 합니다.
“도서관의 모든 사람들처럼 나는 젊은 시절 여행을 했다. 나는 한 권의 책, 아니 아마 책 목록에 대한 목록을 찾아 방황했다.” 그리고 그 글은 이런 구절로 마무리됩니다. “만약 어떤 영원한 순례자가 어느 방향에서 시작했건 간에 도서관을 가로질렀다고 하자. 몇 세기 후에 그는 똑같은 무질서(이 무질서도 반복되면 질서가 되리라, 신적인 질서) 속에서 똑같은 책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리라. 나는 고독 속에서 이 아름다운 기다림으로 가슴이 설레고 있다.”
지금 이 편지를 읽는 당신은 어떤 목록으로 자신의 도서관을 만들고 계신가요? 물론 꼭 책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모든 것에는 언어가 들어 있”으니 당신이 매일 만나는 사람, 걸어 다니는 길, 무심히 스쳐가는 일상의 풍경 또한 소중한 책이고, 아름다운 텍스트입니다.
가을 비가 내리고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이제 한 여름의 막막함을 내면의 치열함으로 바꿔내야 할 때인가 봅니다. 알기 위해선 알지 못하는 곳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직장 생활과 대학원 공부를 핑계로 미뤄뒀던 여행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상상의 도서관’의 문을 힘껏 밀어봅니다.
2008년 9월 25일 , 서른 아홉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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