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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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아침이면 산에 가까워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산이 갑자기 흔들리고 실쭉거리더니 다시 멀어졌다. 산이 말을 하는 듯 했다. 산은 다시 나를 피하여 조그맣고 희미하게 멀어졌다. 왜?" - 에밀리 카
‘나는 누구일까?’ 어쩌면 아주 단순한 질문인데, 쉽게 대답하긴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름을 말하거나, 직업이나 혹은 사회적 위치를 말한다고 해도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이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직장에서 팀을 옮기고 새로운 일에 적응하려다 보니, 제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금 궁금해졌습니다. 분명 기획을 하고, 컨셉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기획은 무엇이고, 컨셉은 또 무엇이냐고 제게 묻는다면, 또한 쉽게 대답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아직 전문가가 되지 못한 탓인지, 순발력이 부족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떠오르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장자의 제물론,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남곽에 사는 자기가 탁자에 기대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짝(몸과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제자 안성자유가 물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몸이 이렇게 시든 나무 같고, 마음은 죽은 재 같아 질 수 있습니까? 지금 탁자에 기대 앉은 사람은 어제 탁자에 기대 앉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자 자기가 말했다. “자유야, 현명하게도 너는 그것을 묻는구나! 나는 지금 내 자신을 잃어버렸는데, 너는 그것을 어찌 아느냐?”
우리는 때로 남곽의 자기처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했는데, 텅 빈 괄호처럼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무색의 나날들이 불현듯 우리를 찾아오곤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건강한 망각일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자신 안에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고, 무언가 부족하다면, 또 다른 새로운 것이 들어설 빈자리가 생겼다는 뜻도 될 테니 말입니다.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어딘가에 깊숙이 숨어 있는 보물을 찾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물론 보물을 찾기 위해 우리는 모험을 시작하지만, 길을 떠나고, 미로를 헤매는 동안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는 그 어디에도 없었지만, 도로시는 그 여정에서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고, 또 그만큼 성숙했듯 말입니다. 다시 한번 장자의 말을 빌리자면, “도는 (그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道行之而成)”
(2008년 10월 16일 , 마흔 두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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