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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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니던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선,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 프리드리히 니체
가을이 깊어갑니다. 창 밖의 풍경은 계절의 절정을 넘어 서서히 기울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일년 중 이맘 때가 가장 좋습니다. 쓸쓸한 풍경과 차가워진 바람이 마음 속의 무언가를 흔들리게 하나 봅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를 걸으면서 지나간 봄과 여름을 되돌아봅니다.
그 동안 너무 심각한 얼굴로 세상을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바쁘다, 바쁘다는 텅 빈 말을 핑계로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은 아닌지, 내 안의 무언가를 찾는다는 핑계로 자못 진지한 얼굴로 책을 읽고, 길을 떠나고, 낯선 곳을 헤매었지만 결국 그 어디로도 향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우리가 흘리는 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걱정하느라 흘리는 나쁜 땀, 또 하나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흘리는 건강한 땀. 둘 다 힘들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겠죠. 그 동안 정작 문은 힘껏 밀어젖히지 못하고, 문이 열릴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문지방 앞을 서성이며 나쁜 땀만 흘린 것은 아닌지 옷깃을 여며 봅니다.
올해 초 읽었던 사부님 책 ‘세월이 젊음에게’의 구절이 떠오릅니다. “꿈을 꾸기 시작하면 도중에 그만두지 마라. 다시 사거리로 되돌아오지 마라. 끝까지 가라. 끝에서 길들은 다시 만나게 되고, 그 길은 우리를 우리가 바라는 곳으로 인도한다. 그 길이 우리를 부를 때 힘을 내어 끝까지 가라. 그 길 끝에 우리가 바라던 인생의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만큼 꿈을 향해 가는 여정이 험난한 탓이겠죠. 그러나 영혼을 찾아가는 여행은 불굴의 의지만으로 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여정의 난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쾌한 정신이 더욱 중요합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짐까지 고집스럽게 짊어지고 가는 낙타나, 강한 이빨로 세상을 호령하는 사자가 지닌 부정의 정신으로는 길의 끝을 만나지 못합니다. 끝없이 부서지는 모래성을 만들면서도 웃을 수 있는 아이의 정신만이 새로운 길을 창조해냅니다.
그래요. 우리 모두 끝없이 꿈을 꾸어야 하지만 너무 진지하게 하지는 마세요. 경제 위기에 빠진 국가를 위해서도, 전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도 하지 마세요. 백성자고가 그랬듯 천하를 구한다 해도 "한 개의 터럭도 뽑지" 말고 우선 자신을 구하기 위한 혁명을 하세요. D. H. 로렌스의 시구처럼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이 아닌 재미를 위한 유쾌한 혁명을 시작하세요. 생은 고통이 아닌 즐거움일 수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
* D. H. 로렌스, 제대로 된 혁명 中
2008년 11월 6일 , 마흔 다섯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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