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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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그를 세게 치고 지나갔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처럼 정직하게 마흔이 가진 모든 유혹과 방황에 노출된 사람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흔은 마지막 남은 청춘의 모습으로 우릴 괴롭힙니다. 마치 젊음의 끝인 양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시그널을 뿜어 냄으로 젊어서 할 수 있는 무슨 일인가를 마지막으로 저질러 보도록 유혹합니다. 마흔이 되면 또 우리가 그 나이가 되도록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것을 겨울 나목처럼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마흔이 되면 미래를 위한 터닝 포인트로 새로운 인생을 위해 무언가 대단한 계획을 짜내도록 우리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심하게 공격 받은 사내입니다. 그는 심하게 일에 치이기도 했고 공황 장애를 겪기도 했고, 회사를 나와야 했고, 거의 날마다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쉽게 굴복하지 않는 사냅니다. 나는 그에게 '성실한 독종'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는 그 별명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술조차 마음만 먹으면 두 달 쯤 끊을 수 있습니다. 그는 집에서 회사로 가는 동안, 그리고 술을 먹고 집으로 들어오는 동안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월화수목금금금'의 싸이클을 따르는 IT 업계의 개발자들을 위하여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 라는 책을 썼습니다. 웃기는 제목의 책입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절대 웃기지 않습니다. 나는 그 책의 첫 번 째 독자가 그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희망을 위해 그 책을 썼습니다. 나는 그가 그 책에 혼신의 힘을 다 바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책은 그의 삶에 기념비적인 이정표였습니다.
그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를 때 멋집니다.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 합니다. 키가 작고 곱슬머리에 반대머리기 때문에 처음 척 볼 때는 별로지만 사람들은 그를 좋아 합니다. 몇 년을 지켜보는 동안 점점 더 노래를 잘 불러 갑니다. 요즘은 가수 수준입니다. 야구모자를 뒤집어 쓰고 눈을 지그시 감고 열창을 할 때는 작은 체구가 커 보입니다. 술을 많이 먹기 때문에 나름대로 건강의 비법도 가지고 있습니다. 칡즙을 달고 살고, 이름이 이상한 동양무술도 합니다. 무릎을 굽히고 엉덩이를 내밀고 팔을 묘하게 교차시킨 기본 자세 - 나도 몇 번인가 따라해 보았는데 영락없이 싸는 자세입니다 -를 보여 줄 때는 귀엽기도 합니다. 약간 시니컬하지만 유머 감각이 뛰어나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감동도 잘하고 눈물도 가끔 흘릴 줄 압니다. 그 많은 세월 조직에 몸 담고 있었으니 닳기도 많이 달아 눈치도 빠르지만 하기 싫은 것은 모르쇠도 잘 합니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아내가 좋아하는 좋은 남편은 못됩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을 깊이 사랑합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가족과 작은 밴드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나는 언젠가 그가 만든 '내 인생의 노래 하나' 라는 까페에서 해가 질 때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그는 매년 좋은 책을 한 권 씩 써내는 좋은 작가로 자랄 것입니다. 그가 운영하는 그 특별한 카페에는 그를 좋아하고 그를 따르는 후배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나짐 히크메트의 시를 읇는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도전하는 사람으로 남을 테니까요.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꽃이 크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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