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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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부모님 댁에 내려와 아버지께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 속에서 그대를 발견하게 되길 바랍니다.
아버지께
영균이 결혼 전에 함을 팔러 광주에 다녀왔어요. 영균이가 집이 어려웠는데 이제 형편이 풀렸나 봐요. 의대를 갔고, 의대에 다니는 여자와 결혼하니 앞으론 괜찮겠죠. 오늘 보셨죠? 영균이 차가 그랜져에요. 준호 집은 제법 잘 살았고, 처가도 부유해서 결혼하면서 큰 집을 장만했어요. 현실적인 재열이는 고시에 합격해서 공무원 5급 사무관이고, 벌써 네 살 된 아이가 있어요.
아버지, 아들만 뒤쳐지는 것 같았어요. 저는 아직 차도 없고, 집도 없고, 아이도 없고, 여자친구도, 직장도, 돈도 없으니까요. 오늘은 미래도 없고, 용기도 없고, 희망도 없어 보였습니다. 잘 지내다가도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비교하게 되는 날에는 저만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오늘 기분이 좋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서산에 왔어요. 생활비가 없어서 전세에서 월세로 옮겨온 당신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 안 좋았어요. 이 곳은 너무 조용하네요. 몰래 담배를 피우러 집밖을 나갔다가 가로등조차 없는 허허벌판이 지독히 쓸쓸해 보였어요. 허허 웃으며 노인 둘이 살기에는 좋다 하시지만, 그 벌판만큼 아버지도 외로우실 거에요. 돌아다니기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더 그렇겠죠. 아버지, 죄송합니다. 해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아버지는 이상주의자였죠. 다른 아버지들이 의사, 변호사를 권유할 때 당신은 제게 늘 “조금 어려운 경제 사정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 라고 가르치셨어요. 저는 그렇게 살고 있는데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요? 어쩌면 세상은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몫이 아닌가 봐요. 단단히 먹은 마음이 이렇게 반복되다 보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겠어요. 그게 참 두렵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그래도 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래요. 후회할 지도 모르죠. 오늘처럼 무너지는 날도 있을 거에요. 그래도 지금처럼 실컷 울고 다시 시작할래요. 모든 일에 이유가 있는 건 아닌가 봐요. 저 그냥 아버지 말대로 살아갈래요. 남부럽지 않은 아들이 되어드릴 자신은 없어요. 그러나 언젠가 아버지가 옳았다고 증명할 수 있는 아들이 될 거에요. 존재가 증거가 되어 제 자식들에게도 똑같이 말해줄 겁니다.
오늘부터 거울을 보며 매일 제게 주술을 걸 거에요. 아버지와 사부의 말을 반반 섞어 말해줄 거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 네 꽃도 한 번은 필 것이니, 두려워하거나 의심치 마라. 너는 잘 할 것이다.”

제 아버지는 현실주의자이시고 아직도 당신 말을 따르지 않았던 작은 딸때문에 속상해 하십니다.
다섯형제 가운데 유독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아버지 뜻을 거스른 작은 딸은
아직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지도 못하니까요...
요즈음의 저는, 나는 내 딸에게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건가 하는 겁니다.
나는 딸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될 수있을 것인가?
인생 후반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하는 까닭이 제겐 여기 있습니다.
마음과 결심이 담긴 편지 잘 읽고 갑니다~

가장 잘 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경제적인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가져다 줄 거예요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현실은 너무나 불리한 것이 많죠.두렵고 힘드실때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쓰러져도, 쉬어가도, 중요한것은
다시 일어나는 것이니까요.기운내세요!!
어떻게든 위로를 화이팅을 해드리고 싶었는데...오늘 처음 온 이곳에서 이렇게 글을 남기는 이유는
아마도 제가 많은 위로를 받았나봐요
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지도 못한 저는 승오님이 부러워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어요^^
밤이 깊었네요
휴우 모두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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