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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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발가벗고 세상 속으로 오지 않고, 유형types과 이미지images로 왔다.” - 성 빌립보의 복음
올해 초, 3기 연구원 수업을 끝내며 제가 풀기로 한 주제는 이미지(image)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미지’라는 주제는 그저 막연하기만 할 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 저 책들을 살피며, 또 다른 수업을 들으며 실마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 당시 모호하나마 제가 풀고자 했던 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실(reality)과 이미지(image) 사이의 여러 경계를 탐색하여, 그 모든 것들의 사이(in between)에서 상상력이 날아오는 지점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리서치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한 지점을 정하고 그 장소를 카메라와 함께 헤매며 ‘사이의 풍경’을 찾아 보는 것입니다. 여러 후보지 중 저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한데 섞여 있는 북촌을 최종 탐사지로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삼청동 길을 천천히 걸어보기도 하고, 북촌의 골목길을 헤매기도 하고, 때로 비오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다지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담은 풍경들은 다른 이의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북촌의 풍경들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현실과 이미지 사이의 풍경을 찾아보겠다고 호기롭게 길을 나섰지만, 오히려 북촌에서 길을 잃고 만 셈입니다.
그러다 한 친구의 블로그에서 다음 장면을 발견했습니다. “아름답고 거대한 돈까스로 점심을 먹고... 매일같이 지나치던 얕은 언덕에서, 눈부시고 탐스런 나팔꽃 덩쿨 앞에 섰더니, 새 삶 훈련 센터가 만화처럼 나타났다.” *
‘새 삶 훈련 센터!’ 저 또한 몇 번 지나간 언덕이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풍경이었습니다. 그 때 제 머리 속에 ‘동피랑’이라는 지명 하나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동피랑은 경남 통영에 있는 허름한 언덕 마을인데, 예술가들이 모여 골목길에 벽화를 그린 뒤, 관광지로 유명해진 곳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쉴 새없이 들이닥치는 관광객들 때문에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홍역을 치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각자의 시선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 때서야 저는 제가 아주 작은 상자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보고 있지만 정작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새로운 풍경을 찾으러 다녔지만 다만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있을 뿐이구나. 나는 이 곳을 방문자의 시선으로만 바라봤을 뿐, 거주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생각은 하지 못했구나. 결국 삶의 표피를 겉돌고 있을 뿐이구나.”
그 날이 바로 제가 넘어진 날입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 곳에 바로 제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출발점임을 깨달았습니다. 삶의 표피 너머,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 모험의 시작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과 함께 다가왔습니다.
“발견을 위한 진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찾는 데서 시작된다.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lie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seeking with new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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