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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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아주 조금 서툴 뿐이다. 너도, 나도, 세상도.’
지식이 모자라 쓸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능력이 없어 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마음은 지식이나 능력으로 주는 것이 아님을 잊고 있었습니다. 마음은 함께 공감함으로서만 줄 수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그리고 세상도 모두 ‘서툴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함께 공감할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겠습니다. 그 일이라면 저도 할 수 있겠습니다. 편지에 마음을 담겠습니다. 서투른 한 걸음 속 작은 감동과 조그만 깨달음을 담겠습니다.
올해 1월 7일, 수줍게 이 편지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한 해가 기울어갑니다. 이제 저는 서울대학교의 도서관에 앉아 그대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그간 얼마나 그대 마음에 가 닿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편지 속에 얼만큼 진실한 마음을 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종일 책상에 머리를 부딪히다가, 산책을 몇 번씩 다녀온 날도 있었습니다. 담배 한 갑과 몇 시간을 방황하고 돌아오면 왜 진작 책상에 앉아 글을 쓰지 않았는지 이상하리만큼 술술 써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울었고, 어떤 밤은 웃었습니다. 어떤 글은 인위적이었고, 어떤 글은 지나치게 감정적이었습니다. 여러 날을 방황했고, 더 많은 날을 재능이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몇몇 분들이 제 문체가 ‘징징체’라고 놀립니다. 허구한날 징징댄다는 것이지요. 돌아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글은 마음을 여과 없이 비춰주는 거울이니까요. 2008년 한 해, 알 수 없는 추위에 참 많이 떨었습니다. 확신에 차서 들어간 회사를 실망스럽게 떠났고, 머리가 깨져 피를 많이 쏟기도 했으며, 텅 비어버린 고독에 몸부림치고, 한없이 게으른 스스로를 책망했습니다. 이 편지를 시작할 때 저는 겨울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돌아 이제 다시 겨울입니다.
“겨울에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여름의 푸르름이 시야를 가로막던 것과 달리, 한 그루씩 또는 한꺼번에 나무들의 또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그들이 뿌리내린 땅을 볼 수 있다. 겨울은 눈앞의 풍경을 깨끗이 치워 우리에게 자기 자신과 서로를 더 분명히 볼 수 있는 기회, 우리 존재의 밑바닥까지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 파커 팔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그러나 벌거벗은 제 모습 속에서 분명한 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눈물 속에서 제가 학교를 바꾸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는 것을 알았고, 한숨 속에서 젊음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대를 위한 나침반 프로그램을 열었고 스무 살의 체험이 녹아 있는 책을 쓰고 있습니다. 겨울은 죽은 듯 보이는 끝이지만, 서툰 몸짓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겨우내 황량한 가지 사이에서 나무가 하는 일은 남몰래 ‘겨울눈’을 틔워내는 것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겨울 속에서 그대 역시 서툰 몸짓을 시작하겠지요.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이 겨울에 틔워낸 작은 눈 하나가 언젠가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들어 나무가 되고, 다시 부식토가 되어 다른 이의 존재의 토양이 될 것임을, 언젠가 우리의 벌거벗은 이 서투름 속으로 똑바로 걸어 들어가 투명한 자신과 만나고, 소리 없이 그리고 풍성하게 영혼을 키워갈 것임을 말입니다. 서툰 한 걸음이 곧 풍성함의 시작입니다. 그러니 그대, 힘 내십시오.
1년간 그대와 깊이 만나 행복했습니다. 서툰 글을 읽어 주시고, 따뜻한 애정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책으로 뵙겠습니다. 건강하시고, 건승하세요.
2008년 12월 29일
옹박 박승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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