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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4일 11시 36분 등록

준경아, 재경아, 학교 가자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예전에는 겨울 방학이 크리스마스 이전에 시작되었는데 주5일 수업제가 되면서 방학이 늦춰졌습니다. 출근해서 통합학급 3학급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우리 학급 아이들을 도와주었던 것을 감사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래 도우미를 몇 명만 따로 초청해서 생크림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하려고 했는데 담임샘들이 누구 하나가 장애학생을 돕는 게 아니라 전체가 조금씩 거들고 있다고 했거든요. 1학급당 10만원 가지고 할 수 있는 나름 파티를 지원하게 될 것 같습니다. 4학년 세 아이는 모두 1, 2급 복지카드를 지닌 중증학생입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제가 특수학급 담임이고요. 통합학급 담임샘들은 매년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은 지금은 우리 학교 1층에 있는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빵 만들어 갔습니다. 나름 직업전환교육입니다. 만들어서 들고 오면 잘 모셔놓고 급식 먹고요. 그 다음에 반에 올라가서 파티를 할 겁니다. 아이를 재워놓고 헐레벌떡 일을 하는 사람 마냥 마음이 급하네요. 

 

경영의 철학자라는 별명이 붙은 게리 해멀의 <경영의 미래>를 읽었습니다. 그는 머리말부터 마지막 장까지 경역혁신의 멘토가 되길 작정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경영혁신가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당신이 경영혁신가가 될 건가 말건가, 된다면 어떤 물음을 갖고 어떻게 노력해볼건가를 하나 잡아채라고 합니다. 게리 해멀이 말하는 경영의 미래를 학교에 적용하려니 너무 막연했습니다. 웹처럼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커뮤니티를 살리고,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대안을 실험하고 그리고…., 막연합니다. 특수학급 경영에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개론서에나 나오는 일반적인 특수학급 경영이 아니라 저의 교실 경영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서요. 제가 맞이하고 있는 도전은 점점 중증의 중복장애 학생들이 학교로 오고 있는 흐름입니다. 취학통지서를 받는 그 초등학교에 말이예요. 저는 그 특수학급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세 아이들을 4년 동안 지켜보면서, 특수학교도 아님서 이렇게 한 학년에 몰려 있는 중중 장애 학생들과 지낸 경험은 매우 특별하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그 중 한 아이, 제가 서준경이라고 가짜 이름을 지은 아이를 만나 함께 한 3년을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준경이는 1학년말에 특수학교에서 전학 왔습니다. 이 도시에는 3개의 공립특수학교가 있습니다. 그 중 준경이가 다녔던 특수학교는 3개의 구에서 살고 있는 학생들을 커버합니다. 준경이는 장애가 심해서 특수학교로 진학은 했지만 매일 학교로 등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휠체어를 탄 데다가 TV 10cm에서 봐야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저시력이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거든요. 이런 경우 순회학급에 배치합니다. 아이는 집에 있고, 교사가 집으로 갑니다. 오전 10시부터 1120분에 주 3회 방문하는 겁니다. 준경이는 순회학급에서 1년 있었습니다.

 

준경이네 순회학급 담임이었던 특수교사가 이 근처 일반학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어요. 이 아이면 온돌 시설이 되어 있는 학급에 진학할 수 있겠다 생각해 어머님께 말했습니다. 엄마가 취학통지서를 받아서, 취학유예 신청을 했던 바로 그 학교에 상담을 가셨어요. 그리고 저는 우연찮게도 거기에서 오후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어요. 다른 학생보다 1살이 많은 아이를 업고서 데려오셨어요.  큰 아이를 포대기에서 내려놓는 장면이 낯설었어요. 아이는 개구리나 토끼처럼 폴짝거렸어요. 무릎관절을 땅에 찧으면서 움직이는 모양이 아프겠다싶어요. 다리 사용법이 그렇게 굳어진 것 같았어요. 시선의 방향이 일정치 않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데를 향해 눈동자가 움직이고 있어요. 소리는 낼 수 있고 잘 웃었습니다. 여름방학때 온돌 까는 공사를 하느라 죽을 똥을 쌌는데 막상 준경이가 떡 나타나고 보니, 그 시설을 이용할 만한 아이가 마치 숨어서 기다린 것 같았어요. 우리 학교는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건물 안에 특수교육지원센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어서 학교에서는 취학을 거부하면 관리자 개인이 벌금을 물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그저 우리 아이를 학교에서 받아주기만을 바라며 겁먹은 얼굴로 두리번 거리고 있었어요. 윗분들은 특수학급에서 괜찮으면 받으라 했습니다. 저는 안 괜찮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오기로 결정된 후 겨울방학동안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기저귀를 차고 등교하는 아이의 기저귀를 갈면서 다른 5명의 아이를 케어한다는게 두려웠어요. 한 아이는 희귀난치성 경기가 있어서 업혀 내려오는 일이 잦았고, 한 아이는 산만해서 손을 놓치면 어디로 튈 지 몰라 심장이 벌렁거릴 때가 많았어요. 문제는 이 중증아이들을 커버하면서 글씨를 읽고 쓸 수 있는 다른 아이들을 공부를 시켜야 하는 거였어요. 저는 그 아이가 10년 동안 갖혀있던 집에서 아침마다 나와서 학교로 왔다가 한 나절 머물다 돌아가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배워도 좋지 않을까? 아침마다 아이가 적을 두고 있어 시간 맞춰 가야만 하는 데가 있는 것도 지금보다 낫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급식만 먹고 가도요. 또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는 또래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도 듣는 것만도 가치가 있고요. 아이가 학교에 오기 위해 많은 이들의 수고가 필요했습니다. 일단 엄마가 3층의 집에서 아이를 업어 내립니다. 휠체어를 타고 학교로 오고요. 오후에는 활동보조인이 아이를 데리러 옵니다. 학교에 가니까 엄마가 예쁜 헬로키티 가방과 신발 주머니를 사 주셨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가방부터 맨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아이가 얼굴을 잔뜩 갈아가지고 왔어요. 학교 간다고 나갔다가 계단에서 굴러서 다쳤다는군요. 학교 가는 걸 좋아해주어 고마웠습니다.     

 

3년동안 있었던 일들이 많습니다. 힘든 일도 많았어요. 사진도 많구요. 정리해봐야겠네요. 새벽에 이 부분을 몇 장 쓰면서 혼자 울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는 걸 알았고요. 수고해주신 보조선생님 생각도 났습니다. 또 특수교사에게나 관심있는 이런 주제에 대해 쓰면서 보통 사람들이 이런 게 읽을만 할라나? 게리해멀은 경영에 전문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람과 일반인 모두가 즐겁게 편안히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썼구나 싶었어요.  

 

어쨎든 3년이 지난 지금 준경이는 깡총깡총이 아니라 엉금엉금 길 수 있습니다. 두 발과 두 다리를 동시에 움직이는 토끼처럼이 아니라 한 발과 한 손을 교차해서 디디는 호랑이처럼입니다. 직립보행은 워커를 잡고서 가능합니다. 특수체육 강사가 프로그램을 짠 걸 재활의학과 주치의한테 점검 받아서 보조선생님이 매일 한 시간씩 운동을 시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한 효과입니다. 또 오늘 아침에는 엄마한테 안녕이라고 인사했습니다. 기저귀는 6개월만에 떼었어요. 그 이후에도 자주 소변 실수를 했고, 지난 주 금요일에도 커다란 아이가 이불을 쓰고 있었지만 그건 실수이지 일상이 아닙니다. 저는 소리를 버럭 지르고 혼을 내 주었습니다. 오늘 주말 이야기를 하는데 책을 읽었다는 뜻으로 손을 모았다가 손바닥이 하늘로 보이도록 쪼개놓고 살랑살랑 흔듭니다. 언젠가 제가 가르친 바디랭귀지입니다. 책상 사이를 짚으면서 두 발로돌아다닙니다

 

2주 전에는 준경이 동생을 초청해서 생일잔치를 했습니다. 자매의 생일이 이틀 상간이었어요. 그 아이를 보면서 울컥했지요. 준경이네 동생 재경이는 준경이보다 더 장애가 심한 학생입니다. 혼자 허리를 펴고 앉을 수 없어요. 준경이가 속해있던 특수학교 순회학급 3학년 학생. 준경이처럼 재경이도 집에만 있고, 주 3회 오전에 순회학급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서 공부를 합니다. 한 달 동안 활동보조인이 준경이를 휠체어로 태우고 집에 가는 길을 동행해서 같이 집에 갔었어요. 그 반 아이들 몇 명이서 휠체어를 타고서요. 재경이는 집에 있었어요. 우리가 한 시간쯤 놀다가 썰물처럼 빠지자 재경이가 울었다고 했습니다. 저만 두고 다 가버려서요. 재경이를 학교로 일 주일에 한 시간만 데리고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얘기를 하다가 준경이네 담임선생님이 단 한 번이지만 재경이를 초청해보자고 했습니다. 특수학교에 공문을 보내서 수업시간에 담임선생님과 같이 들어올 수 있었어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특수학교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전맹인 재경이는 낯선 아이들의 소리에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재경이를 따라 부모님도 같이 오셨어요. 생일 잔치여서 탕수육을 튀겨서 엄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들고 오셨어요. 아버지도 직장 휴가를 맞춰 오셨어요. 우리학교에 준경이가 왔던 첫 해에 운동회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그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해요. 이번에도 그 아버지는 작은 딸의 웃는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으셨어요. 제가 특수교사를 하는 한 그 웃음은 잊혀지지 않는 빛나는 장면이 될 것 같아요. 저 아이가 일주일에 1시간만 비장애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저는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개리 해멀은 어디에 있냐구요? 그가 저더러 스스로 구안해 보라고 옆구리 찔러대던 <특수학급 경영의 미래-중도중복장애학생을 맞이하는>은 또 어디 있고요?  저의 결론부터 말한다면 중증장애학생일수록 특수학교에 소속되어 있든, 일반학교에 소속되어 있든, 근거리 일반학교와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통합 경험을 하는게 필요하다, 유리하다는 겁니다. 특수학급으로 진학하는 중증 학생들은 더 늘어날 거구요. 아니 왜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먼 데 가는 스쿨버스에서 더 긴 시간 통학을 하고, 아니면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겁니까? 학교에 오는 방식을 다양하게 생각하면 누군가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중도중복장애학생일수록 먼 데 있어서, 스쿨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특수학교보다 거주지에 있는 특수학급에서 통합기회를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중증 학생만 모아 놓은 특수학급이 낫지 않겠냐구요? 중증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급이 우리 관내에 딱 1개 있는데요 거기는 거의 유동식을 먹고, 누워지내고, 특수 휠체어를 아이에 맞게 주문제작해야 하는 아이들이 갑니다. 학부모가 개조한 차에 아이들을 실어서 등하교시키고요. 대부분 뇌병변 1급 학생들이고기저귀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 학생들이 모두 내가 근무하는 특수학급으로 와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그 학생들은 그 학생 나름의 돌봄이 필요하구요. 일반학교에 와도 특수학급에서만 지낼 가능성이 큽니다.   

 

기본적으로 특수학급 시설 변화가 필요합니다. 온돌공사가 유효하고요, 엘리베이터 필요합니다. 기타 필요한 보장구는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지원받았죠. 준경이의 경사진 책상, 운동용 바, 워커를 받았어요. 모든 학교가 이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 학교의 온돌공사는 경기 때문에 누워 쉬어야 하는데 분리불안이 있어 보건실 침대를 이용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어 시작한 것이었어요. 또 하나 중증학생은 기저귀를 이용하고, 소대변 뒷처리를 도와주어야 하는데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습니다. 마침 우리학교는 야구부가 있어서 샤워실이 있었어요. 거기다가 온수기를 설치했어요. 그런데 씻기기는 했지만 옷을 갈아입히려면 눕혀서 해야 하는데 다시 안고 들어와서 다른 아이들을 다른 데로 데리고 나가거나 교사용 책상의 파티션 뒤에서 입혀야 했습니다. 그나마 다른 아이들이 복도에 없는 수업시간 중에 첩보작전 하듯이 했어요. 보조선생님의 헌신으로 할 수 있었어요. 이런 게 매우 어려웠습니다. 우리 학교는 활동실을 따로 가지고 있었어요. 두 특수학급 사이에 교실 하나를 더 주어 거기서 방과후활동을 하고, 또한 치료지원, 이 아이같은 경우는 하루에 한 시간을 운동을 시킬 수 있었어요. 만약 이런 시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근데 이렇게 활동실을 따로 가진 학교도 많지 않습니다.

 

교육과정 운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육과정이라니 거창한데요, 준경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지 잘 모르겠거든요. 보통 일반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통합교육을 위해서 오고 대부분 시간제로 특수학급을 이용합니다. 준경이는 아예 아침에 특수학급으로 등교를 해서 통합학급에는 월요일 아침조회 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보조원을 동행해서 1시간만 올라갔다 내려왔습니다. 하루에 1시간을 운동을 시킨다고 해도 거의 전일로 특수학급에 있게 되구요. 저는 올해 주당 수업시수가 28시간이었습니다. 전교에서 가장 많았어요. 챔피언. 특수교사는 아이 수가 적어서 어렵지 않겠다고 하지만 아이 수가 적어도 거의 언어가 없는 아이들이라 교사가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게다가 한 시간도 공강이 없으니 수업준비의 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구요. 이 학생이 4학년이 되면서 부터는 계발활동 시간에도 보조인력이 들어가야 했어요.

 

특수학교 순회학급에 다니는 동생의 경우 학교간 협약이 있으면(특수학교-일반학교) 특수학교의 담임교사가 1:1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올 수 있을까? 현재 특수학급에서의 통합은 보조원이 개인별로 있는 게 아니어서 아무리 여러 보조인력을 수급한다고 해도 통합학급에서 머무는 1~2시간만을 보조인력이 지원할 수 있을 뿐입니다. 1회 정도 거주지 일반학교로 타진해보면 어떨까? 지원하는 교사에 한해서 1년 단위로 한정해서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누가 시도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 학교를 옮기지 않는다면 한 번 해보겠어요. 또는 특수학교 순회학급 담임이 된다면 한 번 해보겠습니다.  

 

잘 안보이고 잘 아프고, 말을 할 수 없는 이 학생들이 학교로 오자면 생각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학교 다니는 방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일 주일에 1번 학교로 들어가는 것도 아예 안 해서 집에만 있는 것보다 의미가 있으니까요. 이런 시도가 학부모, 학생, 교사로 이루어진 이 공동체 모두에게 어떤 의미가 있냐구요? 이건 좀 더 어려운 질문이니까요 천천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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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 05:23:07 *.154.223.199

준경, 재경이라고? 작명이 기똥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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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9 16:38:26 *.229.239.39

콩두가 있는 곳에도 경영의 미래가 있길 소원 해봅니다.

우리가 매일 일 하는 곳에서 사람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숨쉬는 역동성을 경험하고,

목적을 이루는 삶이 되도록 내가 서 있는 곳을 경영하라는 뜻으로 주변에 알려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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