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숙
- 조회 수 3837
- 댓글 수 15
- 추천 수 0
여러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가슴이 떨립니다. 마음을 나누는 편지는 작년 연구원에 지원하면서‘해보고 싶은 일 목록’에 일찌감치 넣어둔 소중한 제 소망 중의 하나였습니다. 저는 편지쓰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습니다. 말과 글이라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저는 다 좋아합니다. 그러나 말보다는 글로 마음을 전하는 일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 제가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어찌 떨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제 편지를 읽어줄 여러분들은 변경연이란 매개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분들이라서 저와 마음이 잘 통할 것 같습니다. 그 점이 저를 더 설레게 합니다.
제가 앞으로 쓰게 될 편지는 인생의 전환을 맞이했거나,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여러분들과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되어야 할 수많은 이유들을 가진 사람들이고, ‘자신’이 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일주일에 한 명씩, 일 년 동안 약 50 여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제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우연이 저를 누구에게로 데려가 줄지 스스로도 무척 궁금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이 편지의 주인공들이 나오게 되겠지요. 오늘은 먼저, 저에 대한 이야기로 편지를 열겠습니다. 먼저 첫 편지가 다소 길어지는 것에 대해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01년 어느 날
바쁜 직장 생활로 정신이 없던 어느 날 저녁, 느닷없이 내 눈에 들어온 잡지 하나. 그날 낮에 방문했던 누군가가 내 책상 위에 던져놓고 간 것이다. 그 잡지를 읽어나가던 나는 어느 코너에서 얼어버렸다. 그곳에서 나는 구본형이라는 작가와 그의 신간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를 만났다. 그의 글은 고요하지만 사자의 포효처럼 내 안에 각인되었다.
2002년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로 다시 그와 재회를 했다. 30대를 마감하며 삶에 조금씩 조급함이 밀려들던 그 때, 내 안에 갇혀있던 변화에의 갈망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난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나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자신이 슬펐다. 그런데, 그런데 그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들과 어떻게 결별할 수 있을까. 실행은 여전히 나에게 미지수였다.
2003년 8월
40이란 나이가 현실이 되었다. 인생 후반전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었다. 변화는 이제 생존의 요구로 다가왔다. 그 때 불현듯 생각나는 사람이 그였다. 내게 그는 자신을 모델로 이미 40대에 변화를 일구어낸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신열로 들뜬 어느 날 밤 그에게 절실한 편지를 썼고, 결국 그를 만났다. 그가 1인 기업가로 집에서 일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변화경영연구소는 사무실이 아니고 바로 그였다. ‘남이 어떻게 봐 주는가’에서 초탈할 수 있다면, 이미 멋진 인생일 것이다. 그가 많이 부러웠다.
그를 만나고 이틀 후
그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들고 찾아간 지리산 단식원, 그가 인생의 변곡점에서 힘차게 U턴을 하기로 맘 먹었을 때, 먹지 않음으로 오히려 채웠던 곳이다. 그곳은 찾아가기도 쉽지 않았지만 내 인생 40년을 거슬러 그곳까지 닿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인생에는 단지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자신에게 설득하기 위해 나는 보름 단식 후 유럽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운명은 아직 내 편이 아니었다. 이틀 집을 비운 사이, 갑자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급히 상경했지만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리진 못했다. 보따리를 집에 내려놓는 순간, 모든 것들이 허공에서 울고 있었다.
2003년 12월
꿈벗 1기 모집 공고가 났다. 신청을 했다. 그러나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내 꿈의 첫 페이지’는 그렇게 열리지 못하고 다시 골방의 먼지 속으로 들어갔다. 가끔 연구소에서 날아오는 편지를 읽었다. 현실이 될 가망이 없는 불투명한 꿈을 꾸는 나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룬 것 없이 시간은 모질게도 잘 흘러갔다.
2007년 7월
학생이 준비되면 스승이 온다는 말이 있다. 때가 된 것일까. 꿈만 꾸는 고통에서 벗어나기위해 결단 하나를 내렸다. 그렇게 꿈벗 13기가 되었다. 행동하지 않는 한 난 언제나 시달릴 것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더 이상의 깨달음이 아니라 행동 한 스텝,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곳에서 이전 삶과 단절하는 2박 3일의 자궁(단식) 체험을 가졌다. 그는 훌륭한 안내자였고, 인생에 대한 나의 모호함은 사라졌다.
2007. 10월
내 일생의 프로젝트, 모닝페이지를 시작했다. 그 동안 나는 시간과 상황을 핑계 삼아 한번도 내 자신을 근본적으로 대면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변화의 추동력이 내 안에서부터 솟구쳐 나올 수 없었다. 매 번의 각오가 작심삼일을 거듭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모닝페이지와 함께 오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인생의 마라톤을 함께 뛸 훌륭한 모닝페이저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라는 화두에 절실한 사람들이었다. 모닝페이지 모임은 현재 4기를 거쳐, 앞으로도 기수를 거듭해 계속 성장해갈 전망이다
(http://cafe.naver.com/morningpage)
2007. 12월
어느 날 문득 직관이 나를 강렬한 소망으로 이끌었다. 그날 밤 직관을 따라 내게 온 푸른 빛 한 줄기를 나는 놓치지 않고 꽉 잡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소망해온 변경연 연구원(4기)에 지원하는 일이었다. 해외 출장이 잦은 내 직업 여건상 고된 과제가 부과되는 연구원 생활은 꿈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 ‘쓰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하는 내 욕망에 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결정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클래식 공연기획자요 해외 음악페스티벌 에이전트로 무리없이 달려가던 내 이력과 기득권도 포기해야 했다. 물론 회사 일도 필요한 만큼 가지치기를 해야했다. 그러고 나자 정말로 ‘불편한 안정감’과는 이별하고 '치열한 변화의 괴로움’과 친해져야 할 시간이 성큼 내 앞에 다가왔다.
2008. 1월
내 나이 40 중반에 이르렀다. 나는 2008년을 내 전환의 해로 삼고 내 맘대로 내 인생 2막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상징적인 의미로 20년간 유지해오던 긴 머리를 싹뚝 자르고 7일 간 단식을 했다. 그것은 일종의 비나리였다. 나는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자의식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었다. 개인으로서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끈질긴 욕망으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었다.
2009.1월
지난 1년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고, 동시에 들끓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고, 우울했고, 시원했고, 기뻤고, 행복했다. 나의 고질적인 패턴들과 싸우느라 힘들었고, 밥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생각한 글이 나를 배반해 우울했고, 책 갈피 갈피에서 만나는 다양한 저자들의 심원한 통찰들로 시원했고, 인생의 사부를 만나 기뻤고, 동병상련하며 서로 보듬고 감싸주는 동료 연구원들을 얻어 행복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제 내 인생의 첫 책을 내기 위해 고심해야 할 1년이란 세월을 앞에 두고 있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안다, 나이에 대한 부담이 내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란 걸. 여전히 나이는 나를 재촉하는 힘이다. 그러나 조급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보폭에 맞는 시간표를 가지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걸을 것이다. 혼란은 이제 없다. 내 내부에는 내 운명의 실을 풀어낼 힘이 있다는 걸 캠벨 아저씨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숙제이고, 내게 진실하게 마주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죽는 날까지 늘 목이 마르게 살 것이다.
IP *.162.86.19
제가 앞으로 쓰게 될 편지는 인생의 전환을 맞이했거나,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여러분들과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되어야 할 수많은 이유들을 가진 사람들이고, ‘자신’이 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일주일에 한 명씩, 일 년 동안 약 50 여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제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우연이 저를 누구에게로 데려가 줄지 스스로도 무척 궁금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이 편지의 주인공들이 나오게 되겠지요. 오늘은 먼저, 저에 대한 이야기로 편지를 열겠습니다. 먼저 첫 편지가 다소 길어지는 것에 대해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01년 어느 날
바쁜 직장 생활로 정신이 없던 어느 날 저녁, 느닷없이 내 눈에 들어온 잡지 하나. 그날 낮에 방문했던 누군가가 내 책상 위에 던져놓고 간 것이다. 그 잡지를 읽어나가던 나는 어느 코너에서 얼어버렸다. 그곳에서 나는 구본형이라는 작가와 그의 신간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를 만났다. 그의 글은 고요하지만 사자의 포효처럼 내 안에 각인되었다.
2002년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로 다시 그와 재회를 했다. 30대를 마감하며 삶에 조금씩 조급함이 밀려들던 그 때, 내 안에 갇혀있던 변화에의 갈망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난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나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자신이 슬펐다. 그런데, 그런데 그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들과 어떻게 결별할 수 있을까. 실행은 여전히 나에게 미지수였다.
2003년 8월
40이란 나이가 현실이 되었다. 인생 후반전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었다. 변화는 이제 생존의 요구로 다가왔다. 그 때 불현듯 생각나는 사람이 그였다. 내게 그는 자신을 모델로 이미 40대에 변화를 일구어낸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신열로 들뜬 어느 날 밤 그에게 절실한 편지를 썼고, 결국 그를 만났다. 그가 1인 기업가로 집에서 일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변화경영연구소는 사무실이 아니고 바로 그였다. ‘남이 어떻게 봐 주는가’에서 초탈할 수 있다면, 이미 멋진 인생일 것이다. 그가 많이 부러웠다.
그를 만나고 이틀 후
그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들고 찾아간 지리산 단식원, 그가 인생의 변곡점에서 힘차게 U턴을 하기로 맘 먹었을 때, 먹지 않음으로 오히려 채웠던 곳이다. 그곳은 찾아가기도 쉽지 않았지만 내 인생 40년을 거슬러 그곳까지 닿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인생에는 단지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자신에게 설득하기 위해 나는 보름 단식 후 유럽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운명은 아직 내 편이 아니었다. 이틀 집을 비운 사이, 갑자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급히 상경했지만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리진 못했다. 보따리를 집에 내려놓는 순간, 모든 것들이 허공에서 울고 있었다.
2003년 12월
꿈벗 1기 모집 공고가 났다. 신청을 했다. 그러나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내 꿈의 첫 페이지’는 그렇게 열리지 못하고 다시 골방의 먼지 속으로 들어갔다. 가끔 연구소에서 날아오는 편지를 읽었다. 현실이 될 가망이 없는 불투명한 꿈을 꾸는 나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룬 것 없이 시간은 모질게도 잘 흘러갔다.
2007년 7월
학생이 준비되면 스승이 온다는 말이 있다. 때가 된 것일까. 꿈만 꾸는 고통에서 벗어나기위해 결단 하나를 내렸다. 그렇게 꿈벗 13기가 되었다. 행동하지 않는 한 난 언제나 시달릴 것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더 이상의 깨달음이 아니라 행동 한 스텝,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곳에서 이전 삶과 단절하는 2박 3일의 자궁(단식) 체험을 가졌다. 그는 훌륭한 안내자였고, 인생에 대한 나의 모호함은 사라졌다.
2007. 10월
내 일생의 프로젝트, 모닝페이지를 시작했다. 그 동안 나는 시간과 상황을 핑계 삼아 한번도 내 자신을 근본적으로 대면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변화의 추동력이 내 안에서부터 솟구쳐 나올 수 없었다. 매 번의 각오가 작심삼일을 거듭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모닝페이지와 함께 오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인생의 마라톤을 함께 뛸 훌륭한 모닝페이저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라는 화두에 절실한 사람들이었다. 모닝페이지 모임은 현재 4기를 거쳐, 앞으로도 기수를 거듭해 계속 성장해갈 전망이다
(http://cafe.naver.com/morningpage)
2007. 12월
어느 날 문득 직관이 나를 강렬한 소망으로 이끌었다. 그날 밤 직관을 따라 내게 온 푸른 빛 한 줄기를 나는 놓치지 않고 꽉 잡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소망해온 변경연 연구원(4기)에 지원하는 일이었다. 해외 출장이 잦은 내 직업 여건상 고된 과제가 부과되는 연구원 생활은 꿈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 ‘쓰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하는 내 욕망에 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결정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클래식 공연기획자요 해외 음악페스티벌 에이전트로 무리없이 달려가던 내 이력과 기득권도 포기해야 했다. 물론 회사 일도 필요한 만큼 가지치기를 해야했다. 그러고 나자 정말로 ‘불편한 안정감’과는 이별하고 '치열한 변화의 괴로움’과 친해져야 할 시간이 성큼 내 앞에 다가왔다.
2008. 1월
내 나이 40 중반에 이르렀다. 나는 2008년을 내 전환의 해로 삼고 내 맘대로 내 인생 2막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상징적인 의미로 20년간 유지해오던 긴 머리를 싹뚝 자르고 7일 간 단식을 했다. 그것은 일종의 비나리였다. 나는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자의식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었다. 개인으로서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끈질긴 욕망으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었다.
2009.1월
지난 1년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고, 동시에 들끓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고, 우울했고, 시원했고, 기뻤고, 행복했다. 나의 고질적인 패턴들과 싸우느라 힘들었고, 밥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생각한 글이 나를 배반해 우울했고, 책 갈피 갈피에서 만나는 다양한 저자들의 심원한 통찰들로 시원했고, 인생의 사부를 만나 기뻤고, 동병상련하며 서로 보듬고 감싸주는 동료 연구원들을 얻어 행복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제 내 인생의 첫 책을 내기 위해 고심해야 할 1년이란 세월을 앞에 두고 있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안다, 나이에 대한 부담이 내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란 걸. 여전히 나이는 나를 재촉하는 힘이다. 그러나 조급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보폭에 맞는 시간표를 가지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걸을 것이다. 혼란은 이제 없다. 내 내부에는 내 운명의 실을 풀어낼 힘이 있다는 걸 캠벨 아저씨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숙제이고, 내게 진실하게 마주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죽는 날까지 늘 목이 마르게 살 것이다.
댓글
15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소은
보낸 편지가 이곳 지면과 연동이 안되는 걸 몰라서 여기에는 따로 글을 안올려두었는데
오늘 둘째애 대학실기 시험 때문에 하루종일 동분 서주하고 돌아와 보니
이렇게 제 글이 여기에 잘 올라가 있고(아마 재동씨가?),어느새 여러 분들이 댓글까지 올려주셨네요.
어휴,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너무 감사합니다.
어제 저는 편지를 하루종일 썼습니다.
편안히 앉아 1시간을 투자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격려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불특정 다수이면서, 또한 '특정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마음을 담아 정성어린 편지를 보내야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기회를 주신 우리 사부 부지깽이님과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즐거운 부담을 안아야겠습니다.
격려를 아끼지 않는 멋진 그대들에게도 한아름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오늘 둘째애 대학실기 시험 때문에 하루종일 동분 서주하고 돌아와 보니
이렇게 제 글이 여기에 잘 올라가 있고(아마 재동씨가?),어느새 여러 분들이 댓글까지 올려주셨네요.
어휴,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너무 감사합니다.
어제 저는 편지를 하루종일 썼습니다.
편안히 앉아 1시간을 투자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격려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불특정 다수이면서, 또한 '특정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마음을 담아 정성어린 편지를 보내야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기회를 주신 우리 사부 부지깽이님과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즐거운 부담을 안아야겠습니다.
격려를 아끼지 않는 멋진 그대들에게도 한아름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삶의 무게가 시간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늘 뒤를 돌아보며 작은 소리로 읇조린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그러나 앞을 보면서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자신에게
진정한 아품으로 물어보자!
그런 자아와의 치열한 아품을 풀어내는
한 여인이 바로 그대,
Lois 당신이라는 사람이라고 믿네요
앞으로 매주 화요일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팍팍한 세상에 감로수 같은 맛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지는 석양에 또 다른 세상을 꿈꾸며,,,,,,,,,
그대 늘 그자리에서 우리의 마음을 행복으로 채워주구려!!!!!
우리는 늘 뒤를 돌아보며 작은 소리로 읇조린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그러나 앞을 보면서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자신에게
진정한 아품으로 물어보자!
그런 자아와의 치열한 아품을 풀어내는
한 여인이 바로 그대,
Lois 당신이라는 사람이라고 믿네요
앞으로 매주 화요일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팍팍한 세상에 감로수 같은 맛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지는 석양에 또 다른 세상을 꿈꾸며,,,,,,,,,
그대 늘 그자리에서 우리의 마음을 행복으로 채워주구려!!!!!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817 | 소명의 발견 [2] | 김도윤 | 2008.12.04 | 3673 |
3816 |
내 꽃도 한 번은 피리라 ![]() | 구본형 | 2008.12.05 | 5347 |
3815 | Good & Bye | 박승오 | 2008.12.08 | 3928 |
3814 |
자기검열에서 벗어나라 ![]() | 문요한 | 2008.12.09 | 7684 |
3813 | 노란책 두 권 [2] | 김도윤 | 2008.12.11 | 5013 |
3812 |
냉정하고 땨뜻한 패러독스 ![]() | 구본형 | 2008.12.12 | 4635 |
3811 |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거라" ![]() | 박승오 | 2008.12.15 | 5281 |
3810 |
스스로 멍에를 짊어진다는 것 ![]() | 문요한 | 2008.12.16 | 8007 |
3809 | 내가 넘어진 곳 [1] | 김도윤 | 2008.12.18 | 3279 |
3808 |
세 가지에 뛰어난 인물 ![]() | 구본형 | 2008.12.19 | 4620 |
3807 | 사부(師父), 구본형 | 박승오 | 2008.12.22 | 3337 |
3806 |
당신의 나이에 0.7을 곱하라 ![]() | 문요한 | 2008.12.23 | 4930 |
3805 | 소라 고둥 껍데기 (the shell) [14] | 김도윤 | 2008.12.25 | 4556 |
3804 |
아주 민감한 고성능 포착 센서 ![]() | 구본형 | 2008.12.26 | 3896 |
3803 | 쉰 한 번째 서툰 편지 [15] | 박승오 | 2008.12.29 | 4810 |
3802 |
감사합니다. 지금 이대로 감사합니다. ![]() | 문요한 | 2008.12.30 | 4406 |
3801 | 참 좋은 한 해, '마음을 나누는 편지' 새로운 필진을 소개합니다. [5] | 구본형 | 2009.01.02 | 4156 |
3800 | 당신의 왼손에는 무엇이 들려있나요? [22] | 신종윤 | 2009.01.05 | 3525 |
» | 나는 죽는 날까지 늘 목이 마르게 살 것이다 [15] | 이한숙 | 2009.01.06 | 3837 |
3798 |
고통을 백화점에 진열해 객관화 하라 ![]() | 앤 | 2009.01.07 | 42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