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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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환, 직업의 전환, 관계의 전환, 지위의 전환, 인격의 전환…전환이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좀 무거운 단어인 것 같습니다. 아이가 넷이면서 일도 해야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전환이란 단어가 다른 단어들처럼 중성적인 이미지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결연한 의지와 욕망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그 단어를 제대로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가진 에너지를 몰아서 투입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건널 수 없는 터널 같은 것이 저에게는 전환이란 단어가 갖는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전환을 가벼운 바람을 타듯 그렇게 쉽게 이룬 사람도 있더군요. 제 편지의 첫 주인공인 주식회사 ‘봄바람’ (www.bombaram.net) 의 공동대표
봄바람은 공동대표인 두 사람의 닉네임 ‘봄’과 ‘바람’을 합해서 만든 이름입니다. 상아씨는 ‘바람’입니다. 이 회사 13명의 직원들은 모두 하늘, 별, 잔디, 나비 같은 제 2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릅니다. 함께 일하는 외부 파트너들까지도 그렇습니다. 내가 방문한 ‘봄바람’의 예쁜 사무실에는 위계는 없고 서로가 부여한 자유로운 질서와 활기만이 살랑거렸습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봄바람에는 봄바람 만의 아우라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회사를 창업한 상아씨의 아우라이기도 합니다.
상아씨의 아우라는 남과 다른 결단을 하는데서 나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러닝데이(learning day)’와 ‘컬처데이(culture day)’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일하지 않고 창조적인 인풋 활동을 하는 날입니다. 짝수달에는 각자 관심분야에 대한 공부나 독서, 여행한 내용을 가지고 프리젠테이션하거나 외부강사를 초청해 특강을 들으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물론 좋은 식당에 가서 맛있는 거 먹는 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홀수달에는 당시 가장 이슈가 되는 문화 행사나 공연을 정해 함께 관람하고 그 느낀 것을 나눕니다. 또한 봄바람은 매년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전직원이 해외로 워크샵을 갑니다. 회사에 대한 상아씨의 비전은 ‘누구보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미지의 사람들 사이를 여행하자 마음 먹은 후 첫 여행의 주인공을 누구로 할까 은근히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떠올린 것이 그녀입니다. 그녀는 저의 대학 후배입니다. 우리는 지난 10월 ‘봄바람’이 대행하는 母校 홍보매거진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처음 만났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같은 색을 가진 사람은 서로를 직감적으로 알아보는 법입니다. 우리는 한 번 만나 식사한 것 밖에 없는데 서로를 평생의 인연으로 점 찍었습니다.
상아씨 회사 ‘봄바람’은 온오프 미디어 콘텐츠 기획과 컨셉 빌딩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방향(컨셉)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콘텐츠)로, 고객과 어떻게(미디어) 만날 것인가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사를 세우기까지 그녀에게는 세 번의 전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녀는 전환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다만 행운에 기대 여기까지 왔고, 오는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뿐이라며 겸손해합니다. 사무엘 골드윈 말대로 행운이 '기회를 알아보는 감각이며 그것을 이용하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운은 그저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누구보다 개척 정신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을 해온 사람입니다. 그녀의 삶이 바로 행운의 재료인 것입니다. 대학졸업 후 세 개의 직장(교수 신문사와 제일기획, 비욘드 마케팅 그룹)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지만 그녀의 열정적인 근성은 대학 커뮤니케이션 센터에서 다큐멘터리 시나리오를 쓰고, 노래 동아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홍보 기획을 도맡아하던 시절부터 발휘되어온 것입니다. 그녀는 늘 배우고 있었고, 한 곳에 고여있지 않았습니다. 돈에 매여 직관이 지시하는 결정을 머뭇거린 적도 없습니다. 한 곳에서 할 만큼 했고 더 발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망설임없이 다음 행보를 스스로 재촉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언제나 더 좋은 우연과 만났습니다. 밥벌이로는 그만한 직장이 없다 싶은 제일기획도 그녀는 미련없이 떠났습니다. 그녀에게 다가온 미국대학 한달 연수 기회를 회사가 허락하지 않은 것은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이번에도 그녀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습니다. 좋은 직장을 잃는 아쉬움보다 새로운 세상과 만날 기대로 설레었습니다. 미국에서의 한 달 동안 그녀는 더 그녀다와졌고, 생생해졌습니다.
돌아와서 일이 너무 하고 싶다고 느낄 시점에 전 직장 상사가 새 회사를 론칭해 그녀의 합류를 원했습니다. 그녀의 결정은 1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결정 하나를 하기 위해선 오만가지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돌다리를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가, 결국 결정하는 일 자체마저 회의하는 저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그녀가 외경스러울 뿐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주는 상사의 회사였지만 그 회사에서 오랫 동안 일하지는 않았습니다. 회사의 수익기반이 광고에 있고, 그녀의 관심은 컨텐츠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동안 프리랜서 생활을 했습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자유도 없고, 밤샘이 현실인 프리랜서 생활은 사람을 거의 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침 그때 그녀와 같은 처지의 또 다른 프리랜서 후배를 만나 서로 고민을 이야기하다 우연찮게 창업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둘은 1분의 망설임도 없이 창업을 결정하고 홍대 극동방송 옆 가정집 룸을 월세 내 곧장 회사를 차렸습니다.그것이 2004년 10월의 일입니다. 오래 기획하고 벌린 일이 아니니 처음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달 동안 그녀가 한 일은 아는 사람들을 번갈아가며 초대해 회사 주방에서 무조건 맛있는 밥을 해먹이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4년, 그녀의 회사는 내실있는 회사로 성큼 컸습니다. 작년 처음으로 그녀는 ‘안식월’을 가졌습니다. '한 번 일을 맡겨본' 클라이언트들은 대부분 장기 클라이언트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제 봄바람은 수익기반이 튼튼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자체 브랜드 개발에도 열중하고 있습니다. 봄바람의 모델 회사는 미국의 IDEO입니다. 이 회사는 컨셉을 파는 브레인 회사입니다.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봄바람은 대한민국의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파트너들과 결속하여 계속 성장해갈 것입니다.
40이 그녀에게는 또 다른 전환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인연들이 봄바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용 더 보기: http://www.bhgoo.com/zbxe/?mid=r_column&document_srl=150827

세상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라,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걸 아는 것만도 얼마나 멋진 일인지요.
'나'라는 아집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살 만한 것이 되니까요.
요즘은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
그런데 말이죠 그걸 알기 위해 세상을 떠돌며 여러 사람과 사건을 만나야만 하는 게 우리 인간이잖아요.
그 아둔함이 아쉽긴 하지만, 그 과정이 다 여행이고, 삶인 것이니 소중하고 좋아요.
그래서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그 세계의 무궁무진함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고,
나라는 존재에로의 여행 역시 재미있는 모험이 될 것 같고...
아무튼 여러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
올 1년, 우연이 빚어낼 내 인생의 필연들을 기대하며 즐겁군요.
봄바람은 올 한 해 더 즐거운 성장을 경험할 것 같네요.
상아씨의 자유로움이 에너지 플로우가 맞는 사람들을 그곳으로 더 많이 부를테니까요.
썽이리님
날카롭고 부드럽고, 그리고 또.. 댓글이 글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을 해주는 분 중의 한 분인 것 같군요.
그리고 아발로키타님, 맞아요. 봄바람은 기존의 조직에서 '조직'을 배운 사람들이 아닌데도 너무 훌륭한 조직을 실험하고 있어서 놀라워요. 아마도 조직을 이끌어가는 이의 마음 중심에 '사람'과 '사랑'이 비즈니스와 수익보다 큰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일을 놀이처럼 즐기며 할 수 있는 것도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식구처럼 '사람'으로 사랑하며 존중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두 분의 댓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