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 조회 수 4473
- 댓글 수 6
- 추천 수 0
약간 과장하면 그녀의 얼굴에는 눈이 반입니다. 관상을 잘 보는 이가 그녀를 가리켜 '천생 여자'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조심스러움이 그런 그녀를 더욱 여성답게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조용함 속에는 많은 아픔과 불안이 들어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술과 평생을 살았고, 그녀는 늘 취해 폭력적인 그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신랑이 될 사람을 데리고 인사하러 왔을 때, 그녀의 아버지와 예비 신랑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답니다. 예비신랑은 그날 술로 아버지를 이겼습니다. 그것이 너무도 통쾌하여 덜컥 결혼한 그 사람은 아버지 보다 더 센 술꾼이었지요. 결혼 생활은 악몽이었습니다. 남편은 술에 몸을 내 맡겼고, 그녀는 그런 남편과 아이들에게 집착했습니다. 어두운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고 어떤 미래도 그 어두운 장막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되지 못할 때, 아마 그때가 그녀에게는 해가 뜨기 직전의 칠흑암흑이었나 봅니다.
지쳐 꼼짝 못할 때 그녀를 구해 준 것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늘 책을 보았습니다. 언제나 부엌에서 보았답니다. 아마 그곳이 가장 편한 공간이어서였겠지요. 수 백 페이지의 책을 밤새워 읽는 일이 그녀에게는 가장 쉬운 일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부엌 독서', 그것이 바로 그녀를 지탱하게 해 준 힘이었습니다.
지금 그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은 책을 한 권 펴냈습니다. 책쓰기와 일은 외롭고 어두운 과거의 공간에서 그녀를 밖으로 이끌어 냈습니다. 언젠가 그녀는 말했습니다. 앞으로 알콜 중독증 가정에서 태어나 그 악순환 속에서 '사람을 너무 사랑하는 병'에 걸린 한 여자가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을 꼭 쓰겠다고 말입니다.
나는 그녀의 그 약속을 좋아 합니다. 그녀의 역사 속에 드디어 미래와 각오가 등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두터운 벽에 갇혀 그 속에서 징징 대고 우는 작은 꼬마였던 그녀에게 이제 그 벽의 한 가운데가 굉음과 함께 구멍이 뚫리고 미래가 엄청난 눈부심으로 쏟아져 들어 온 것입니다. 극복하지 못했던 내면의 작은 꼬마 안에서 아름다운 어른 하나가 꽃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녀는 커다란 진주 같은 여인이 될 것입니다. 진주야 말로 아픔으로 키운 우아하고 부드러운 보석이니까요.
![프로필 이미지](/2011/modules/pxeboard/skins/PXE_flat_board_list/img/default/comment/avatar.gif)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656 | 신념의 과잉 | 변화경영연구소-문요한 | 2006.10.03 | 4437 |
655 |
뭐, 어떻게든 되겠지 ![]() | 오병곤 | 2013.12.06 | 4437 |
654 | 스크루지는 왜 개과천선 했을까? [1] | 문요한 | 2011.12.28 | 4443 |
653 | 별이 된 비명 | 김용규 | 2013.08.29 | 4452 |
652 |
우연도 필연도 아니다 ![]() | 승완 | 2014.07.08 | 4453 |
651 | 주의력이 향상되기를 바라세요? | 문요한 | 2013.03.27 | 4461 |
650 | '생명'이란 무엇인가? | 김도윤 | 2008.10.09 | 4465 |
649 | 자신의 생각을 비판하고 있는가 [1] | 문요한 | 2013.05.22 | 4465 |
648 |
영혼을 위한 독서 ![]() | 승완 | 2012.03.27 | 4470 |
647 | 멜버른에서 보내는 여행단상 | 연지원 | 2013.08.19 | 4471 |
646 |
희망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얼개 1 ![]() | 김용규 | 2009.02.19 | 4473 |
» |
커다란 눈 그녀 ![]() | 구본형 | 2009.01.16 | 4473 |
644 | 당신의 꽃 [앵콜편지] | 최우성 | 2013.06.07 | 4478 |
643 |
무너지지 마라 춤출 수 있다 ![]() | 부지깽이 | 2010.04.16 | 4480 |
642 |
깊고 다른 시선 ![]() | 승완 | 2012.01.17 | 4480 |
641 |
명품의 의미 ![]() | 승완 | 2012.11.27 | 4482 |
640 | 문득 마음이 붉어지고 [3] | 구본형 | 2006.09.29 | 4483 |
639 |
50년간 자신의 천복을 따른 사람과 그의 책 ![]() | 승완 | 2011.08.02 | 4486 |
638 | 선택 | 최우성 | 2012.08.27 | 4486 |
637 | 자기결정권 | 최우성 | 2013.02.18 | 44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