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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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는 끝났다. 그러나 나 오선주는 아직도 파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갈망을 버리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 속에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 빛났다.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나는 생각할 수 없다. 나의 정체성은 언제나 나를 칭찬하는 사람들의 입술 속에 녹아 있었다. 나는 나를 특별하게 느끼며 살았고, 그런 느낌이 안들 때는 일부러라도 내가 특별하단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사람들은 말했다. ‘넌 너무 튀어!’ 그건 나의 관심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나의 돌출된 행동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고, 어떤 한 사물에 오래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어떤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하는 법도 없었다. 그것이 나였다. 나는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2000년, 대학을 졸업하던 해 나는 뉴욕으로 갔다. 모두 유행처럼 어학연수를 가는 때여서 부자가 아닌데도 부모님은 기쁜 마음으로 내 연수 비용을 대셨다. 존 F 케네디 공항에 내리는 순간 뉴욕의 공기는 나를 감미롭게 휘감았다. 그 공기는 내가 호흡하고 싶어했던 바로 그 공기였다. 뉴욕에서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싱싱하게 살아났다. 그곳에는 나를 뾰죽하다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다 나처럼 어느 정도는 돌출된 사람들이었다. 피부색이 달라도, 종교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우리는 한 공화국의 한 시민들이었다. 그곳에서 나의 파티는 시작되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열정 없이 고요하게 죽어있는 것이었다.
귀국해서 ‘인디팬던스’ 3D 애니매이션 제작회사에 들어갔다. 영어라는 무기로 그곳에서 나는 사장 다음으로 중책을 맡았다. 지시하고 가르쳐줄 사람이 없는 회사에서 나의 자리는 단연 주목을 끌었다. 그곳에서 함께 살고 싶은 남자를 만났다. 결혼은 나에게 머무름이 아니었다. 죽도록 사랑하는 그와 헤어지기 싫었다. 그와 함께 사는 길이 곧 결혼이었고 그것은 내게 파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나는
가라앉은 파티의 무드를 더는 견딜 수 없게되자 나는 상하이로 도망을 쳤다. 남편은 나의 갈망을 잘 알았고, 나를 잡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상하이는 뉴욕 못지 않게 살아 숨쉬는 국제 도시였다. 나는 다시 외국인 커뮤니티에 속해 상큼한 공기 속에 허파를 담그고 파티를 시작했다. 남편은 더 이상 그리운 대상이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남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파티가 나를 배신했다. 한 공화국의 같은 시민이라고 믿었던 파티장의 그 사람들은 모두 공중에 부유하는 뿌리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부초같은 인생들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숨쉬는 자유라는 공기가 무서워졌다. 돌아갈 곳이 그리웠고, 아직 내게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곳에는 아직 나를 기다리는 그도 있었다. 나는 보따리를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고, 그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그와 나 사이에, 내가 그토록 소원했던 소통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기 안에 머물려는 그와, 자기 밖에 머물려는 나 사이에 맞물리는 공통의 땅은 없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나는 꿀단지 속에 빠진 곰돌이 푸였다. 단지 속을 빠져 나오려면 꿀을 버려야하는데, 나는 아직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아기를 가질래.’ 나의 입에서 불쑥 떨어진 이 한 마디는 내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아기라니, 나는 아직 나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못했는데, 아직 내 안에 남을 위한 빈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는데, 아기라니, 아기라니…나는 넋을 놓고 울었다.
오늘은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과 부산 해운대를 다녀왔다. 끝내고 싶지 않던 내 인생의 파티를 이제는 정말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오랜 전부터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파티는 오래 머무를 곳이 아니라는 것을. 파티의 스피릿은 순간으로 족하다는 것을. 아기는 나를 제한하려고 이 땅에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커튼이 내려진 파티장의 온기를 내 삶에 영원히 옮겨주려고 오는 것이다. 아기는 곧 다른 나이고, 아기를 통해 나는 더 깊고 넓게 성장할 것이다.
‘아가야 어서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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