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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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도둑이 들어온 것 같아요. 좀 나가봐요.”
나지막한 아내의 속삭임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납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가슴은 터질 듯이 요동을 칩니다. 그래도 맨몸으로 뛰어나갈 수는 없으니 더듬더듬 손에 쥘만한 무언가를 찾습니다. 그러나 멀쩡한 방에 특별히 무기가 될만한 무언가가 있을 리 없습니다. 도둑놈이 무언가를 들고 달아날까 걱정도 되고,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눈초리가 맘에 걸리기도 하지만 손에 잡히는 그 무엇도 믿음직스럽지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줄곧 재능을 찾고 있었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찾기만 하면 그것을 딛고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빛나게 살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집 안에 도둑이 들었는데 무엇을 들고 나가는 것이 좋을지 망설이며 방안에 숨은 채로 뻔한 물건들을 이리저리 비교하는 꼴이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총이나 칼이 튀어나올 리 만무하지만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과 맞서지 못하고 어둠 속에 숨어 구시렁거리는 ‘이불 속 독립군’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천재의 대명사격인 모차르트는 6살 무렵에 작곡을 시작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제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재능을 그는 매우 일찍 발견한 셈이지요 그런데 심리학자인 마이클 호위(Michael Howe)는 그의 책, 《천재를 말하다(Genius Explained)》를 통해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숙달된 작곡가의 기준에서 볼 때 모차르트의 초기 작품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가장 초기에 나온 것은 대개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작성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후 점차 발전해왔다.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에 작곡한 협주곡, 특히 처음 일곱 편의 피아노 협주곡은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을 재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걸작으로 평가 받는 진정한 모차르트의 협주곡(협주곡 9번, 작품 번호 271)은 모차르트가 스물한 살 때부터 만들어졌다. 이는 모차르트가 협주곡을 만들기 시작한지 10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역사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탄생시킨 것은 모차르트의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라 평생을 작곡에 쏟아 부은 지독한 노력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초반에 앞서 뛰어나간 주자가 결승선을 1등으로 통과하는 마라톤 경주를 단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애타게 찾아 헤매는 재능이란 그저 조금 빠른 출발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뭉툭한 요강을 들고서라도 방문을 벌컥 열고 나서야겠습니다. 소중한 인생을 몽땅 도둑맞기 전에 말입니다.
(모차르트에 대한 마이클 호위의 목소리는 (부끄럽게도)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빌어왔습니다. 재능에 관심 있는 분은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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