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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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잠깐 샛길로 가보려고 합니다. 우리 둘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 애는 올 한 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을 맞이할 것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 그 애는 18년 19개월 그 애 생애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 날, 예고된 것보다 1주일 앞서 그토록 소원하던 대학의 합격자 발표가 있었고 그 애가 당당히 합격을 한 것입니다.
기르는 동안 그 애는 네 아이 중에 가장 저의 에너지를 앗아간 아이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목청이 하늘을 찌르듯 날카롭더니 특유의 예민함으로 내내 저를 편안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아무 일도 아닌 것이 그 아이에게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늘 내 용량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는 그 애 때문에 저는 더 많이 겸손해질 수 있었지만 한편 더 많이 지치기도 하였습니다.
그 애는 어릴 적부터 학교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학교에 내려놓고 돌아올 때마다 울며 매달리는 그 애를 떼놓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때 우리는 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 속의 그 애는 외국 아이들 틈에서 늘 울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무너지는 억장을 달래고 있구요. 그런 그 애는 귀국하고서도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대안 학교를 찾았지만, 그 애는 대안학교에도 가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절대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홈스쿨링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았지만 이미 그 때는 제가 ‘풀 타임 잡’을 가진 후였습니다. 그 애는 뒤통수에 붙어 떠나지 않는 편두통처럼 늘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그나마 평온했던 것은 중학교 시절 2년 뿐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그 애의 병이 다시 도졌습니다. 학교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를 학교는 야자(야간자습)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2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은 그 애와 나 모두에게 엄청난 시행착오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는 주도적으로 자기의 꿈을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그 애에게만 신경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혼자 집에 남은 아이는 원하는 대로 잠을 잤고, 영화와 드라마를 실컷 보았습니다. 연극도 보고, 만화책이나 연애 소설을 산처럼 쌓아놓고 읽었습니다. 틈틈이 엄마가 하는 공연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영어 공부를 했고, 검정고시를 보았습니다. 올해는 수능준비를 하면서 작년에 하다만 연기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애에겐 그것을 꼭 해야 하는 이유도, 목표도 불분명해 보였습니다. 일 때문에 그 애를 맘껏 도와주지 못하는 나는 그저 바라보며 그 애가 좀 더 열심을 내지 않는 것이, 제 삶에 좀 더 주도적이지 못한 것이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그 애가 어느 날부터 좋은 선생님을 만나 조금씩 연기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연기가 재미있어, 정말 열심히 해보고 싶어.’
그 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 때 제 눈엔 눈물이 고였습니다. 얼마나 기다리던 말이었는지,아, 이제 이 애가 제 길을 잘 가겠구나. 좀 특별한 외모에 기대어 헛된 꿈을 꾸는 건 아니구나.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몇 달 그 애는 온 몸에 멍이 떠날 새가 없이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사진 위). 노래연기, 몸연기, 자유연기, 제시대사…아침에 나간 그 애는
요즘 웬만한 대학 연극영화과는 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실기 시험에 응했지만 결과는 운명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애는 욕심을 좀 내서 상향지원을 했습니다. 드디어 발표하던 날, 인터넷 발표 창을 앞에 두고 우리는 수험번호를 쳐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 한 순간에 결정될 당락이 두려워 심호흡을 하고도, 오랜 시간을 망설였습니다.
‘**대학교 2009학년도 정시모집, 수험번호 06815030, 김**, 나군 일반전형, 연극영화과 연극연기, 뮤지컬 연기전공, 합격’
우리 눈에는 합격이란 단어만 크게 확대돼서 보였습니다. 두 모녀는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엄마, 합격 앞에 ‘불’자가 붙어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봐!’
그렇게 기다렸으면서도 그 애는 정작 자신의 합격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습니다.
‘나에게 어떻게 이런 행운이, 아, 나 정말 잘해야 할까 봐 엄마!’
내 목을 안고 감격에 젖어있던 그 애가 느닷없이 나에게 큰 절을 했습니다. 그 순간, 지난 2년 동안 묵은 체증이 단숨에 날아가버렸습니다. 옆에서 놀란 눈으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우리집 강아지 ‘동해’는 그날 저녁, 고기 간식으로 포식을 하였습니다.
올 한 해 우리 아이가 어떤 성장을 경험하게 될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아야겠습니다.
우리 둘째가 합격하던 날의 풍경 더 보기: http://www.bhgoo.com/zbxe/158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