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2년 12월 30일 20시 50분 등록

9

 

 어제 내린 비로 동물원 바닥은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그 위로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똥차가 동물원 한 가운데를 지나가자 여기저기서 동물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린 사람이 온 것처럼 원숭이들은 제자리에서 뛰었고, 기린과 사슴들은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면서 반가워했다. 뿌꼬와 소년은 동물들의 소리에 잠에서 깼다. 똥차가 코끼리 우리에 다가가자 똥쟁이는 조수석 창문을 열었다. 사육사가 인사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올 때마다 동물들이 너무 반가워 하네요"

 

 똥쟁이는 손을 흔들며 인사에 답했다. 여자 사육사였다. 그녀는 동물원 유니폼을 입고 긴 장화를 신었다. 모자 아래 빛나는 눈동자는 그녀의 얼굴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었다. 그는 그녀의 깊은 눈을 쳐다 보며 마음으로 말했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미소를 지었다. 코끼리가 창살 사이로 코를 내밀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뿌꼬은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코끼리 코를 잡고 자신의 귀에다 가져갔다. 그리고 코끼리가 말하는 걸 이해한 듯 다시 입으로 가져서는 무언가 속삭인 뒤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오래된 친구에게 비밀 이야기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저씨, 뿌우가 다시 돌아 왔어요. 동물원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서커스 극단에 팔려 갔었는데, 병에 걸려서 다시 이 곳에 와서 치료를 받으러 온 거예요. 저기 발을 보세요. 매일 쇠사슬에 묶여 지내서 심한 상처를 입었어요.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요. 그래도 아저씨가 왔다고 아픈 몸에도 저렇게 기뻐하는 걸 보면 정말 아저씨를 좋아하나 봐요"

 

 그녀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눈물 방울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똥쟁이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코끼리 뿌우에게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뿌우의 눈을 들여다 보면서 마음으로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아픔을 함께 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대화가 끝나자 코끼리 뿌우는 똥쟁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바닥에 있는 맨홀 뚜껑을 열고 긴 호스를 집어 넣었다. 차 안에 있는 빨간색 버튼을 눌리자, 똥차는 굉음을 내더니 털털거리며 코끼리 똥을 빨아당기기 시작했다. 그 사이 뿌꼬와 소년은 열린 창문으로 씨앗을 타고 코끼리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코끼리는 몹시 지쳐있었고 한 쪽 발을 심하게 절어서, 제대로 서 있기 조차 힘들었다. 뿌꼬와 소년은 함께 코끼리 머리 털 위로 사뿐히 내려 앉았다. 뿌꼬는 코끼리 머리 위에서 속삭였다.

 

 "넌 내 이름과 비슷하구나, 뿌우. 난 뿌꼬라고 해. 똥쟁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니?"

 "잘 참고 견뎠다고 위로해 줬어. 그리고 인간들을 대신해서 미안하다고 했어. 비록 너에게 자유를 줄 수 없지만 신에게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든, 있는 그대로 너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말이야."

 

  뿌우는 처음 동물원에 왔을 때 기억을 떠올렸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엄마와 헤어지고 도착한 동물원은 뿌우에게는 낯설고 무서운 곳이었다. 얼마 뒤에 찾아온 똥쟁이의 온기는 마취 총으로 그를 사로 잡은 인간의 두려움을 걷어 주었다. 그는 코끼리 우리 안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었고, 따뜻한 마음으로 뿌우를 바라봐주었다. 뿌우는 그의 눈동자를 보면서 아프리카 초원에서 밤 하늘을 보며 가졌던 꿈을 떠올렸다. 초원은 코끼리에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초원은 모든 생명을 받아들이고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원를 그리워하는 것은 뿌우의 운명이었다.  

 

 "나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어. 저기 똥차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똥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겠지. 너희들에게 부탁이 있어. 나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지 않겠니?  그 곳에 가서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가 되고 싶어. 영원히 푸른 초원과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아"

 

 소년은 뿌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뿌꼬는 소년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씨앗과 함께 코끼리의 똥 덩어리 위에 올라 앉았다. 똥차는 그들 모두를 빨아당겼다. 뿌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혹시 똥차가 터져버리진 않겠지?'

 

IP *.194.37.13

프로필 이미지
2013.01.11 15:13:12 *.154.223.199

똥차가 가는 곳에 동물원도 있군요. @@

코끼리는 정말로 아프리카 초원의 기억을 가진 채로 왔겠어요.

많은 장면과 이야기를 꿰는 오디세우스 같은 뿌꼬네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52 11월 오프수업 과제 file 예원 2009.11.17 3060
1151 [11]론다의 할머니 [1] 오현정 2008.06.11 3061
1150 [양갱]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file [10] 양경수 2011.07.17 3061
1149 나의 재능, 강점, 그리고 용기 [4] 혜향 2009.07.06 3062
1148 칼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준범이 [5] 연주 2010.10.17 3062
1147 다시 시작되는 길... [16] 희산 2009.07.19 3063
1146 창조성과 개념 [3] 백산 2009.09.21 3063
1145 Good-bye 외로움 [5] 효인 2010.01.04 3063
1144 칼럼 33 - 그림책의 힘 [1] 범해 좌경숙 2009.11.30 3064
1143 [사자12] 승호씨의 의문에 대하여 [3] 한명석 2009.11.23 3065
1142 칼럼 14- 마흔세살에 백두산에 오르다. (7월 오프) [2] 범해 좌경숙 2009.07.18 3066
1141 나비No.5 - 보스열전 [9] 유재경 2011.05.01 3066
1140 -->[re]로버트 카파 소은 2008.07.30 3067
1139 호랑이 프로젝트 : 개인이 마케팅을 필요로 하는 10가지 사례 [10] crepio 2009.10.06 3067
1138 프롤로그 - 공간의 변화를 소홀히 하면 내 삶이, 내 꿈이 지루해진다 [2] 혜향 2009.12.22 3067
1137 [33] 소심만세 - 1장 소심 안의 나(2) [3] 양재우 2008.12.29 3068
1136 나에게 부의 미래란~ 혁산 2009.08.24 3068
1135 [사자10]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5] 한명석 2009.11.07 3068
1134 [칼럼 19] 글이 살아 숨쉬는 소리 [7] 海瀞 오윤 2007.07.20 3070
» 꿈쟁이 뿌꼬 #8 - 코끼리 '뿌우' [1] 한젤리타 2012.12.30 3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