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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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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1일 11시 19분 등록

죽은 산악인의 모습을 마치 어제 일처럼 보았다. 흑백사진 속에 활짝 웃으며 동료들과 함께 찍은 베이스캠프의 표정은 말을 건네면 곧 받아 줄 것만 같다. 난데 없이 흐르는 눈물에 나조차 놀랐다. 나도 모르게 그의 모습에 나를 겹쳐놓았던 모양이다. 고상돈의 일대기를 훑어보았다. 1977년 그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세계최고봉에 발을 들여 놓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없다. 살고 죽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겠지만 그의 죽음은 뼈아프다. 이듬해 그는 북미 최고봉을 한국 최초로 오른 뒤 하산하는 중에 산에서 영면했다. 그가 산에 묻친 해, 나는 태어났다. 그의 죽음과 나의 태어남을 연결짓는 일은 물론 억지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나는 그와 엮기고 싶다. 이 마음을 이해하리라.

 

1953년 30여년간 이어지던 세계최고봉 등정 노력은 뉴질랜드의 한 사내가 이룬다. 에드먼드 힐러리와 그의 sherpa인 텐징 노르게이는 누가 먼저 등정을 했느냐에 대한 시비가 있긴 하지만 5월 29일 오전 11시 경 텐징 노르게이가 정상 직전에서 힐러리를 1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정상을 양보했다고 전해 지면서 인류의 첫 등정자는 가려지게 되었다. 힐러리의 등정은 세계최고봉이 세상에 알려진지 100년만의 일이다. 그러나 신이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을 허락한 이후 국가주의가 되어버린 등정 러쉬는 어쩔수 없는 인간이기에 저지르는 불충이기도 하다. 24년 뒤 한국에서 원정대가 꾸려지게 된다. 당시 공화당 국회의원이 원정대장직을 맡는 등 (김영도 원정대장은 대장으로서 훌륭했다) 다소 정치적 색채는 있었지만 정부 지원 6천만원 등 국가적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자유로울수는 없었던 것 같다. 당시 원정대는 총인원 18명, 총 예산 1억 3천만원으로 국가의 산악자원을 모두 쏟아부은 대규모 원정 프로젝트였다.

 

그해 8월 9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여 순조로운 일정을 소화하던 원정대는 한달만인 9월 8일 8510미터 (정상 8848m) 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때까지 원정의 모든 일들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9월 10일 등정을 시도하던 박상열 등반부대장과 앙 푸르바 sherpa는 정상을 불과 100m 남겨두고 탈진상태가 심하고 산소까지 바닥나는 바람에 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하산 도중 산소 밸브를 조절할 수 없을 만큼 탈진 상태가 심해져 8600미터에서 비박을 결정한다. 이튿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되돌아 갔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두사람이 감행한 비박이 당시까지 등반사상 가장 높은 곳에서 무산소 비박으로 기록되게 된 점이다.

 

원정대는 거의 모든 자원을 소진하였고 7통 밖에 남지않은 산소에 기대를 걸고 고상돈과 펨바 노르부 sherpa를 마지막으로 정상으로 떠나보낸다. 이들은 앞서 길을 다져놓은 덕분으로 빠른 진행끝에 결국 9월 15일 낮 12시 50분에 지구의 용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 등정국이고 고상돈은 58번째 등정자가 되었다. 또한 이날은 포스트 몬순기, 즉 몬순기인 6~8월 이후 가장 빠른 날짜로 이 기록은 이후 15년간 깨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본 에베레스트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그들이 처음 그 산을 마주대했을 때의 느낌은 어땠을까. 나와 같았을까. 왜 그들은 그리로 가야만 했을까. 무엇이 그들을 그리로 가게 만들었을까. 나는 왜 거기에 가야만 했을까. 끊임 없는 질문이 하염없다. 인류가 처음 그곳을 발견하고 수많은 사람이 그곳에 오르기를 열망하여 적지 않은 사람이 죽었고 일부의 사람들이 올랐다. 그곳은 인간에게 무엇이기에 죽기를 마다하지 않고 오르려 하는 것인가. 히말라야는 인간에게 무엇인가. 산은 인류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알피니즘은 무엇이고 머메리즘은 무엇인가. 산을 오르는 자에게 이념이 중요한가,사상이 중요한가. 죽음과 마주대하며 오르는 자의 질문은 여전히 살아있다. 4월 16일, 원정을 출발한 후 만 23일째, 나는 그를 보았다.

 

4/16
너무 추워서 잠이 깼다. 남동릉 루트의 캠프1은 바람골이다. 눕체와 로라봉 사이에 협곡에 위치해서 바람이 심하게 분다. 새벽에 일어나 너무 추웠다. 상상하기 힘든 추위다. 그래도 오늘은 베이스로 일단은 내려가기 때문에 발걸음이 가볍다. 캠프1의 고소 적응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캠프1에서 비로소 보았다. 끝없이 뻗은 로체페이스와 옐로우 밴드, 제트 기류를 날숨으로 구름을 들숨으로 쉬는 범접할 수 없는 커다란 생명체와도 같은 모습. 그 경이로움에 그 자리에서 엎드리고 싶었다. 그야말로 압도된 에베레스트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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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15:38:07 *.154.223.199

므찌다 재용!!! 므찌다. 고상돈씨

참 낯설고도 새로운 이야기. 바람부는 어디로 나가고 싶게 만드는 이 느낌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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