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함께 한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펜션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할아버지는 처음 나를 보자마자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한국에서 전사했고, 자기는 유복자라고 소개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보지도 못한 채 청소년기를 보냈을 그 시기를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목이 메었다. 그는 우리는 형제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했다.
할아버지의 며느리도 마음이 아주 따뜻한 사람이었다. 홀로 된 지 오래인 듯 그녀의 얼굴에는 고독과 우수가 드리워져 있다. 아침식탁을 항상 풍성하게 차려서 나그네가 배고프지 않게 이것저것을 권하곤 했다. 저녁이면 그녀의 사촌이며 몇몇 여자들이 이 집으로 몰려와 난롯가에서 뜨개질을 하였다. 그녀는 내가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것을 보고 아주 좋아하였다. 난 종교는 불교이지만 이슬람의 문화를 좋아한다고 하였더니 염주와 거의 비슷한 레스빗을 선물로 주었다. 염주가 108개의 구슬로 꿰어져 잇다면 레스빗은 99개의 구슬로 되어있다.
그녀는 자신이 짠 아이보리색 자켓을 한 번 입어보라고 한다. 예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뚱뚱한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데, 그녀는 예쁘다고 한다. 나는 며칠을 머무는 동안 그들과 정을 나누었다.
나도 밤마다 뜨개질하는 여인들과 함께 난롯가에 앉아 그들과 시간을 보냈다. 활활 타고 있는 장작이 타면서 내는 소리는 오래 전의 유목민의 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자크아탈리의 말대로라면 우리의 유전인자 속에는 노마드적인 요소를 다분히 품고 있다. 어디든지 떠나고 싶어하는 내 방랑기는 1억 5천만 년전에 나타난 포유류에서 시작되어 진 것이다. 생존조건을 결정짓는 다양한 형태의 방랑이 그 시초인 것이다. 아탈리는 “인간은 여행을 통해 태어난다. 인간의 몸은 정신과 마찬가지로 노마디즘에 의해 형성된다. 인간의 고유한 특질은 우선 두 발로 달린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여행의 시작은 생존을 위해서, 지적인 호기심을 위해서, 전쟁을 위해서 다양한 이유에서 시작되었고, 지금은 상업적 여행으로 상업적 노마드가 넘쳐나고 있다. 상업적 노마디즘이 확산되면서 번복될 수 있는 것, 새로운 것, 시급한 것, 고독한 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고, 무한히 다양한 형태의 신체적 정신과 여행이 가능하게 됐으니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여행객들은 그 지역을 통과하면서 “정착민으로서의 의무사항들을 존중하면서 여행해야 한다.”고 아탈리는 말한다.
말하지면 ‘자연을 존중하며, 에너지를 절약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축적하고, 상처를 입히지 않으면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변덕, 불안정, 일시적인 성격, 불성실을 허용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즐거움 속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여행이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되며, 나의 즐거움이 곧 남의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마드의 문화는 바로 ‘더불어 살기’이다.
이는 요즈음 공정여행 바람이 불고 있는 것과 맞아 떨어진다. 공정여행이란 ‘관광객들이 소비하는 이득을 현지인들에게 돌려주며, 인권·생명을 존중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여행을 하자’는 것이다. 일명 '착한여행'이라고도 한다. 공정여행에서 실천할 행동수칙은 ‘환경 파괴하지 않기, 성매매 없는 여행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와 음식점 이용하기, 현지 인사말 배우기 등이다. 이러한 여행방법은 여행사에서 팔고 있는 패키지 상품을 이용할 때는 실천하기 어려운 여행이다. 배낭여행을 한다면 실천하기 쉬운 여행법이기도 하다.
페르가마의 펜션에서의 떠나오던 날의 아침을 잊지 못한다. 아침일찍 출발하는 셀축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기에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할아버지는 난로에 불을 지치고, 며느리는 빵을 썰고, 계란요리를 하고, 요구르트를 만들었다. 나에게 ‘길 떠나면 배고플거라’면서 많이 먹으라고 바게트빵 접시와 따끈따끈한 게란 요리를 내 앞으로 밀었다. 식사를 하면서 자꾸 먹이 메었다. 친정집에 왔다가 떠나는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그들의 피 속에 유목인인 투르크족의 유전인자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손님을 잘 대접하는 문화를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 때부터 노마드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땅에서 죽은 자를 땅에 묻고 살아있는 자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손님을 공손하게 맞아들이고 융숭히 대접하는 것은 여행자의 생활에서 중요한 일이다.
베두인족의 한 격언에 다르면 “손님이란 그가 환영을 받을 때면 왕이고, 그저 재워주는 것이라면 포로이며, 그가 떠나게 되면 사절(使節)이 된다.” 고 한다. 융슝하게 대접을 받은 손님이라면 그 집을 떠나면서 좋은 사절이 되는 것이다.
아탈리는 “여행이란 개인의 의무뿐만 아니라 연대의식의 의무들이 부과되는 행위라는 것을 트랜스휴먼은 인정해야 한다. 트랜스 휴먼은 그 어디서도 독재, 인권 유린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트랜스 휴먼을 한 명이라도 모욕하게 되면 공동의 이익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길을 나서면 한 개인이 아니라 세계인으로 합류를 하는 것이니 그것에 걸맞게 매너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매너를 지킬 때 나를 맞이하는 상대방 또한 나를 보호하고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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