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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일 15시 46분 등록

세계적인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부랑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기다림은 헤아릴 수 없이 오래된 것이어서 이제는 고도가 누구인지, 언제, 어디로 오겠다는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된 이들은 지루함과 초조, 낭패감을 이기기 위해 끊임없는 광대놀음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다림이 한계에 달했을 때 나타난 것은 고도가 아니라 고도의 전갈을 알리는 소년이다. 그들은 그 다음날도 다시 고도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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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도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승진하고 싶냐고요? 저는 그거 별로 달갑지 않아요. 직급이 올라 월급이 오르는 것은 좋지만 그만큼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도 많아지잖아요. 팀장이요? 얼마 되지 않는 팀장 수당 받으면서 골치 썩히느니 그냥 팀원으로 가늘고 길~~~게 가고 싶어요. 다닐 수 있을 때까지 다니다 그만 두려고요.” – 35세 총무팀 나과장()

 

“이직이요? 에휴, 그거 해봐야 별로 이득이 될 것도 없어요. 이직해서 연봉이 좀 오른다고 쳐요. 그래 봐야 얼마나 되겠어요? 차라리 이 회사에 있다가 희망퇴직 위로금 받아 나가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예요. 근속년수가 길어지면 위로금이 더 많아질 테니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버텨야죠. 위로금 받고 재취업하면 일석이조 아닌가요?” – 40세 영업팀 이차장()

 

그렇다. 이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바로 ‘희망퇴직’이다. 산업전반에서 구조조정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 요즘, 어쩌면 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고도를 만날 때가 온 건지도 모르겠다. 금융, 자동차, IT, 제약, 유통, 중공업에 이르기까지 희망퇴직 프로그램이 줄줄이 발표되고 있으니 말이다. 커리어 컨설턴트로 일하다 보면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워하기 마련인 희망퇴직을 오히려 고대하고 있거나, 목적을 이룬 후 재취업을 원하는 후보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정리해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희망퇴직 후 재취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은 취업시장에서 희망퇴직자의 가치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꼭 필요한 인력이라면 희망퇴직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 보편적이다. 그래서 희망퇴직을 한 후보자는 회사에서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과 관련이 있다. 희망퇴직이라는 것이 동종 산업에서 많은 회사들이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아 시장에 희망퇴직자가 많아져 일시적인 공급 과잉이 된다. 경기가 좋지 않아 수요는 많지 않은데 공급이 많으니 경쟁이 더 심해져 재취업은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희망퇴직자는 나이가 많고 경력이 긴 후보자들이다. 젊은 사람에 비해 이들이 갈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니 재취업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눈높이를 한참 낮춰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마지막으로 희망퇴직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력 계발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앞에 언급한 나과장이나 이차장처럼 버티기 전략을 오랫동안 고수하다 보니 자신의 직무 확대나 전문성, 직급 성장 등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같은 영업사원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직무를 확대한 경우에는 경력 가치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인 경우 개인병원을 담당하다가 종합병원을 담당하게 되면 직무의 확대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개인병원에 비해 종합병원 영업은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업사원에서 출발해 팀장을 거쳐 본부장이 되고 임원이 되었다면 직급 성장이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성과 책임이 커지고 역량이 성장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력 계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지금의 직장에서 그런 도약이 어렵다면 이직을 고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염없이 고도만 기다리는 나과장이나 이차장의 이력서에서는 그런 가치들을 찾아 보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다.

 

따라서 희망퇴직을 고려하고 있다면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를 추천하고 싶다. 회사원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의 사업을 하거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할 계획이라면 퇴직금에 위로금까지 얹어 주는 희망퇴직 프로그램은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지인 중에는 15년 간의 워킹맘 생활을 마감하고 대학원에서 상담과 코칭을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공부가 끝나면 자신의 이름을 건 상담소를 오픈할 계획이다. 영업사원으로 퇴직한 이모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자금에 희망퇴직 위로금을 합쳐 부동산과 주식을 구입했다. 직장 생활할 때 월급만큼은 아니지만 생활비는 충분히 조달된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니 생활은 예전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사무엘 베케트는 자신의 희곡에서 고도가 누구인지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희곡을 읽거나 연극을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고도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고도(Godot)가 영어의 God와 프랑스어의 Dieu를 압축한 합성어로 ‘신’이나 ‘신의 구원’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베케트가 이 희곡을 쓴 시기가 제2차 세계대전 중임을 감안하면, 그에게 고도는 ‘종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독자 각자에게 고도의 존재를 설정하도록 의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억압된 사람에게는 자유가, 불행한 사람에게는 행복이, 기나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고도일 수 있으니 말이다.

 

당신에게 고도는 어떤 의미인가? 나는 당신의 고도가 무엇이든 그 선택을 존중한다. 직장에서 초고속 승진을 해야 성공한 인생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기쁨도 소중한 것이다. 다만 고도를 기다리는 당신의 일상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그것처럼 지루함, 초조, 낭패감으로 얼룩지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도를 만난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미리 고민해 보길 추천한다. 그런 준비와 고민을 통해 이후의 삶의 만족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 필자 재키제동은 15년 간의 직장 경력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경력 계발에 대해 조언하는 커리어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클린 케네디의 삶의 주도성을 기반으로 김제동식 유머를 곁들인 글을 쓰고픈 소망을 담아 재키제동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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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2 15:54:46 *.252.144.139

이번 칼럼은 희망퇴직을 고대하고 있는 일부 직장인들을 주제로 써봤습니다.

자신의 경력가치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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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11:01:28 *.127.180.153

잠깐 멈추었다가도 또 한걸음 내딪는 그대의 저력에 박수를!!!

그대도 새해 복 많이 받고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신년회때 보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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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12:07:43 *.252.144.139

오오, 선형 마담님이 친히 글을 남기셨네. ㅎㅎ

마무리를 못하고 이것저것 벌이기만 해서 조금 걱정은 되지만,

이런 글을 쓰는 재미가 쏠쏠해 하고 있다네.

 

선형 마담님도 새해엔 더욱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라오.

신년회 때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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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7 12:59:02 *.166.139.33

컬럼 잘 읽었습니다. 제가 -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 주변에서 혹은 제 동료가 구조조정으로 인한 퇴사의 경우에 받았던 패키지가 꽤 짭짤해서 사실 남은 사람들이 오히려 떠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자의가 아니 타의에 의해서 밀려나거 떠났지만 적지 않은 돈을 챙긴 후 대부분 제2의 삶 - 이직, 창업 - 을 살아가기는 하더군요. 다만, 이직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사항은 40대가 되기 전에 희망/명예퇴직을 했던 사람들이었죠. 40대 이후의 동료들은 예상하지 못한 외부의 충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더군요. 


두번 겪었던 구조조정은 일부 인원의 조정 수준을 넘어서서 일부 사업부만 남기고 모두 매각 내지는 정리하는 대규모 조정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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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7 13:03:20 *.252.144.139

오윤홍님, 댓글 감사합니다.

주신 말씀에 힌트를 얻어 40대 이후에 명예퇴직한 분들을 위한 칼럼도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연구원의 좋은글>로 자리를 옮겨 매주 일요일 칼럼을 기재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 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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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15:59:16 *.154.223.199

연구원의 좋은 글을 연재하신단 소식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 그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겠네요.

저는 희망퇴직을 기다리는 이야기를 읽으며, 연금 나올 때까지 버티는 교사로 바꿔서 읽었어요.

뭔가 계발을 해야겠네요. 저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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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3 08:02:38 *.143.156.74

에휴, 콩두 언니는 엄청 계발하고 있는거죠.

항상 학생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 글에서 다 보이던데요.

연구원 2년차 과정이 만만치 않아요.

1년차 과정만큼만 하시면 좋을 결과 있을 겁니다.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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