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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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요~”
사무실로 배달된 커다란 꽃바구니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습니다. 꽃바구니를 받은 상현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여직원들에게 꽃이 배달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남자 직원들 중에서는 상현씨가 처음이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용한 성격의 그는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꽃만 배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꽃을 따라온 도시락에는 예쁘게 줄지어 늘어선 김밥이 하나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거기다가 후식으로 먹을 과일까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가 함께 먹으라고 보내준 음식이라 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인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누군가는 멋지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부럽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배우자는, 여자친구는, 남자친구는 도대체 왜 이런 이벤트를 못하냐는 장난 섞인 불만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졸지에 상현씨의 여자친구는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그런데 그때 옆자리에 조용히 서있던 동료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제 귀를 파고 들었습니다.
“아~, 이렇게 도시락을 싸서 보내면 참 좋아하겠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 속이 멍해졌습니다. 그렇더군요. 정말로 그렇더군요. 같은 것을 보고도 이리 다르게 느낄 수 있더군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분위기에 휩쓸려 도시락 배달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던 저는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 친구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사랑하는 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이를 두고 “주도적인 노력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향상시키는 인간의 불가사의한 능력보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없다.”라고 말했던 모양입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철학자의 지혜가 작은 사건을 통해 온전히 제 것이 되었습니다.
집에서 아이와 씨름하느라 매번 똑같은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는 아내에게 맛난 도시락을 배달시켜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깜짝 놀라 전화를 걸어올 아내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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