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고맑은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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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나 겪는 그런 날입니다. 준비가 안 된 글쟁이들에게는 특히나 자주 있는 일입니다. 편지를 썼다가 전부 지웠습니다. 써 놓은 글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잘 쓰지 못한 것보다는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는 제 스스로가 부끄러웠나봅니다.
원래 글은 이렇습니다. 남들이 뭐라하든 내가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외투를 사러 가서는 착용감이나 실용성을 따지기 전부터 거울에 비친, 즉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제 모습을 보고 어느 색깔이 더 잘 어울리는지 따지던 도중에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하더나 전부 허상이었구나?' 라구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잘못 들렸다고 생각해 다른 옷으로 갈아 입어봤지만 거울속의 제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4년을 넘게 입고 다녔던 오래된 점퍼와는 비교가 안 될만큼 작아보였습니다. 내면의 소리와 동시에 벗이 제게 지나가다 건냈던 말도 떠올랐습니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 신경(눈치)을 많이 쓰긴 하지'
다른 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겁니다. 허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자부하면서 살았는데 제 에고에게는 무진장 많이 영향을 끼쳤던 모양입니다. 잠이 오지 않아 아주 늦게 잠자리에 누었지만 뜬눈으로 밤을 꼬박새고 새벽닭이 울고 나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은 이유는 깨닫지 못한 제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형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은 사건이 저에게 어떤 의미가 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이 생겼을까요? 어떤 모습이 진짜 제 모습일까요? 새해 벽두에 치른 사건이니 올 해 저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생각 합니다.
따뜻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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