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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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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2일 05시 46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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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계신 곳은 어떤지요? 이곳 산방에는 곧 봄이 오려나 봅니다. 호수를 거스르고 아랫마을 느티나무를 휘돌아 불어오던 찬바람이 제법 온화해졌습니다. 어느새 성급한 쥐똥나무와 까마귀밥여름나무는 새잎을 삐죽 내밀어보고 있습니다. 몇일새 모두 짝을 찾아 나서려는지 새들의 노래 소리도 부쩍 소란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햇살이 달라졌습니다. 창으로 드는 햇살에는 어느새 따스한 기운이 가득 스며있습니다.

 

아무래도 바람이 나려나 봅니다. 자꾸 들로 숲으로 나가고 싶고 걷고 싶어집니다. 기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듯도 합니다. 겨우내 함께 방 안에서 살았던 무당벌레들이 마치 반란의 군사들처럼 일어서고 있습니다. 그들도 창문 밖의 들판이 그리워 바람이 난 모양입니다. 요새 부쩍 햇살을 좇아 창문에 달라붙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이 녀석들은 지난 늦가을, 아직 내가 산방에 입주하기도 전에 먼저 집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녀석들입니다. 그 가을, 산방의 흙벽에 들러붙었던 수만 마리의 무당벌레 중에 용케 집안으로 들어갈 틈새를 찾아낸 녀석들로, 방 안으로 들어와 나와 함께 겨울을 나고 있는 생명들입니다.

 

처음에는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보이는 대로 잡아서 내보냈는데, 많이 추워진 이후에는 그냥 함께 살자고 두었습니다. 녀석들이 어떻게 이곳은 사람의 집이니 들어가지 말아야지 생각할 수 있을까? 집의 틈을 제대로 막지 못한 내게도 죄가 있는 것 같고, 그저 겨울을 건너자고 들어온 생명들이니 함께 겨울을 나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그들이 이렇게 떼로 몰려온 까닭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박절하게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당벌레는 추위를 함께 견디는 것으로 겨울을 나는 생명입니다. 그들은 서로의 체온을 합쳐 추운 겨울을 건너는 지혜를 지니고 있습니다. 부는 바람에 우수수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그들은 이제 곧 추워지리라는 것을 압니다. 어디고 숨어들어 웅크린 채 겨울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홀로 지내는 겨울은 그들에게 위험합니다. 그 위험을 아는 그들은 연대(連帶)에 나섭니다. 혹한을 연대의 힘으로 맞서는 것입니다. 수십 수백 마리가 새끼 손톱보다도 작은 몸을 서로 맞대어 체온을 나눔으로써 추위라는 시련과 맞서는 것입니다. 흙으로 지어 볕을 그대로 받는 이 산방이 그들에게도 좋아 보였을 것입니다. 이곳 흙 구멍 속에서, 지붕 속에서 서로의 몸을 맞대며 겨울이라는 시련을 넘어서고 싶었을 것입니다.

 

무당벌레만이 아닙니다. 나무는 이 겨울 죽은 가지의 속과 잎을 내어주어 애벌레의 겨울을 지켜줍니다. 그것으로 제 꽃의 중매인이 될 벌을 살리고 딱정벌레를 키우고 나비를 기르듯, 숲의 수많은 생명들이 연대의 힘으로 겨울을 건너 봄을 맞이합니다. 사람이 시련을 건너는 방법에 필요한 지혜가 어찌 이들의 지혜와 다를까 싶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곁을 내어주고 지켜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의 숲은 여전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시절입니다. 우리에게도 무당벌레들이 만들고 나누는 그 미세한 연대의 체온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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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별
2009.02.12 08:38:55 *.230.220.92
겨울은 자연에게 많은 시련을 주는 동시에 봄이라는 축제를 준비하는 시간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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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9.02.12 08:59:47 *.253.249.69
" 이곳 남쪽 바다에도 봄소식이... "
우린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하면서도 후회한다. 그대의 글을 읽으니 산으로 가실것을 권유한 나의 지난일이 잘한 일이라 생각이든다. 대동산의 봄소식이 어쩜 나의 집창가에서 보이는 바닷가의 봄소리와 같은지 모른다. 봄이오면 그대의 평온하고 화려한 글귀가 세상에 알려 질 것이다. 그건 봄소리가 아니라 백오의 슬픈 울음소리 일 것이다. 그대의 책을 읽으며 만인이 같이 부르는 노랫 소리가 될 것이다.

"良馬逐 利艱貞 日閑輿衛 利有攸往"
명마가 달린다. 길을 비켜라. 과거의 한을 품고 달려나간다. 어려움도 뒤로하고 고생도 이긴다. 명마는 오직 자신의 사상을 뿌리면서 달려 나간다. 그는 원점의 공간에 자기의 원을 이룰 것이다.

백오선생!
시간은 이제 願을 이루며 그대곁에 있습니다.
부디 초심을 잃지말고 끝까지 가시길...

봄이오는 바닷에서 노질 초아가 응원의 소리를 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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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9.02.12 09:30:25 *.29.226.158
꼭 그 곳에 다녀온 듯 산방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자연의 묘사를 정말 보는 듯이 해주셨네요. 요 며칠 몸이 안좋으니 마음도 안좋아지는 느낌이였는데, 오늘 마음의 편지를 읽고 마음이 맑아진 느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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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2.12 09:56:22 *.190.122.154
아름다운놈님.

지난번 공동체에 대한 글과 연결이 되는 글이군요.
오랫만에 공원의 산길을 통해서 출근을 해 보니 나무들이 새싹을 내보내고 까치가 그렇게 요란을 떠는군요.
이름은 아직 모르지만 돌틈에 난 파릇파릇한 풀들이 봄을 알려주나 봅니다.
이번 겨울은 이래저래 유난히도 추웠던 기억이 많습니다.
인간세상의 겨울은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 겨울을 이기는 방법이 연대가 아닐까 하는 님의 말씀을 오늘도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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썽이리
2009.02.12 09:57:57 *.48.246.10
용규님, 이곳 빌딩숲속에서도 봄바람이 콧속을 타고 들어와 가슴속을 한바탕 휘젓고는 '나몰라라' 하고 속절없이 도망가버립니다. 얄밉기는 하지만 좋은 기분은 어쩔수 없나봅니다.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고 걸음걸이에 여유가 생깁니다. 훈풍과 양광, 봄이 오는 기척입니다. 어김없이 옵니다! 그래서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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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2.13 11:03:08 *.229.154.144
깜장별샘_ 오늘 내리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조금 추워지겠죠? 그리고 곧 봄이 당도하겠죠? 그때가 오면 샘 계신 캠퍼스의 그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고 싶군요.

초아선생님_ 선생님의 응원가가 제 정신을 새롭게 흔들어 깨웁니다. 감사합니다.

앨리스님_ 이 숲의 이야기로 맑아질 수 있다는 말씀이 저를 격려합니다. 감사합니다.

햇빛처럼님_ 맞습니다. 지난 글과 연결되어 있는 글입니다. 앞으로도 희망은 어디에 집을 짓고 살까? 라는 물음을 가지고 연결된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썽이리님_ 봄을 닮은 기상이 찾아오셨군요. 몸이 먼저 봄을 포착하면, 곧 마음도 훈훈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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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분
2009.02.16 00:10:38 *.82.101.80
기가 막히는 군요
저는 이 글을 소리내어 읽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습관으로 읽기 싫어서 입니다.
모두 하나 하나 너무 신기합니다.
나무의 이름들도
진짜 무당벌레가 그렇게 겨울을 나는지도 솔직히 믿어 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보게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참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닮고 싶습니다.
음...
저도 변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자꾸 드리고 싶은 말씀
감사합니다
또 글을 올려 주세요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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