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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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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7일 04시 07분 등록


그녀는 영락없는 도시 여인입니다. 얼굴이 하얗고 키가 큽니다. 영리하고 똑 부러집니다. 일을 잘해서 사람을 놀라게 하고 성실해서 맡은 일을 놓치지 않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훤히 알고 세속을 이해하는 촉각이 뛰어 납니다. 말도 재미있게 잘해서 함께 있으면 앞뒤가 척척 맞게 사람을 웃깁니다.

어쩌면 너무 깐깐한 도시 여인 같아 빈틈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래 빼놓고는 뭐든지 잘하는 그녀의 재기에 눌려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허술함이 비교되는 것을 마음 내켜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녀는 타고난 좋은 재주에 의해 빛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종종 멀리 느끼기도 하나 봅니다.

그녀가 가진 아주 멋진 점은 사람을 보는 특별한 눈입니다. 인생을 통해 가장 중요한 약속은 결혼일 것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순천 사람입니다. 지방에서 대학을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그녀와 결혼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남자가 아직 제대로 된 벌이가 없을 때 결혼을 한 것이지요. 이것저것 조건을 이미 갖춘 얼굴 하얀 서울 남자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전형적인 도시 여인으로 그녀를 평가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의외의 일로 여겨졌을 지도 모릅니다. 똑똑한 여인의 헛똑똑이 결정이라고 여길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 그 자체가 어떤 결혼 조건 보다 중요한 결정적 기준이라는 것을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내가 자신의 사랑과 포부를 품어 줄 수 있는 지를 여러 번 물어 본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그녀의 남편을 만나 보았을 때, 그녀의 결정이 훌륭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현실 적응력이 뛰어난 재주 많은 이 여인이 내 연구원으로 활동한 것에 대해서도 약간 의외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는 사회적 부적응자라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모두 평범함 속에 나름대로 뛰어난 점들을 가진 창조적인 사람들이라는 것, 결코 주어진 인생에 쉽게 만족하거나 굴복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현실적으로 가장 잘 적응하고 그 속에서 훌륭하게 인정을 잘 받고 있는 이 여인이 어째서 이 복잡한 창조적 부적응자들의 모임에 뛰어들었을까 궁금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녀에게 짧은 편지를 보냅니다.

" 나는 네가 웃을 때가 좋구나. 웃으면 네 눈이 없어지지. 마치 눈썹이 아래 위로 쌍으로 있는 듯 보인단다. 그 때는 진짜 촌년 같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느냐 ?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때는 마음의 눈으로 봐야한다는 것을 아마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장님이라고 부른다. 장애자임에도 '님'자를 붙여 높여주는 이유는 육체의 눈을 잃으면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엔 너를 자주 볼 수 없구나. 네가 눈이 없어지듯 웃는 모습을 조금 더 자주 보았으면 좋겠다. 너는 그렇게 눈이 없어질 때 마다 아주 좋은 것을 보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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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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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09.02.27 13:42:33 *.232.127.164
그녀와 나는 함께 공공부문의 혁신에 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첫 책을 함께 썼다.
그녀와 일하고 책을 쓰면서 매우 스마트하고 센스가 뛰어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첫 책이라는 어려운 작업을 그녀와 함께 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쓰면 쓸수록 쉬워지키는커녕 조심스럽고 어렵다. 난 그렇다.

책을 쓸수록 새삼 깨닫는다.
첫 책을 쓸 때,
그녀와의 협업이 내게 큰 도움이었고
그녀와 함께 였기에 첫 책을 쓸 수 있었음을.

올해 좋은 일이 그녀에게 손짓하고,
그녀가 그것을 우와하게 잡아 채기를 바란다.

빛나는 사람, 그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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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09.03.02 21:40:29 *.193.194.22
그와 대화하면 유쾌하고 막힘이 없다.

그 안에는 여리고도 섬세한 여심이 있지만 그것을 읽어주는 사람은 드물다.

어느날.. 그와 함께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내가 하는 일을 반성한 일이 있다. 그 같은 이와 함께 일하고 싶다.
아마 그 무렵 내 하챦은 일에 또 다른 열심을 더할 마음을 얻었다.

20:80식의 나누기가 일의 논리를 쉽게 수용하지만
사람들이 갈라놓은 80이 하는 일의 내용에 대해 혼자서 고민했던 시간들이었다.

지금 나는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는 인식이
내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했던 그 시간이 소중하다.

그가 맞이하는 모든 아침이 향기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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