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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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넓은 논밭에 50여 가구의 전원마을이 들어서기로 되어있습니다. 도시민의 농촌유입을 확대하고 도농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기십 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을 활용해서 만드는 마을입니다. 이 일을 추진하는 이도, 입주할 이들도 모두 도시에 사는 사람입니다. 일을 추진하는 그는 묻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마을을 조성한 뒤 거기에 한 채의 집을 정해 귀농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자연 에너지만을 이용하여 생활할 수 있는 생태적 정주시설을 조성한다고 했습니다. 훌륭한 생각이고 주변을 위해서도 참 잘된 일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그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추진하는 마을설립 계획이 정부로부터 최종 승인을 얻었고 분양도 성황리에 마쳤다는 소식을 들고 나의 산방을 찾아온 날, 그는 마을에 입주할 사람들도 훌륭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고 했습니다. 은퇴를 앞둔 대기업의 고위간부도 있고, 어느 정당에서 일하는 핵심적인 일꾼도 있으며 학식을 갖춘 은퇴교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마을 이름도 그 곳에 살고 있는 나무를 상징으로 삼아지었고, 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붓글씨로 그 이름을 받아놓았다고 했습니다. 도시민에게 직접 농산물을 연결, 판매함으로써 이미 살고 있는 원주민 농가들의 소득증진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존 농민들이 쌓아온 자연친화적인 지혜들과 연결한 새로운 사업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그의 설명을 듣자니 그가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사람으로 소외된 곳에서 대안을 찾고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가 방문해서 하는 말을 듣고 나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마을조성 예정부지에 붙어있는 어느 종중 소유 야산의 키 큰 나무들을 모두 베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그 나무들 때문에 들어 설 마을 부지에 햇빛이 들지 않는 곳이 있는데, 그 필지를 분양 받은 사람들이 항의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곳 높은 곳에서 오랫동안 그곳을 관찰한 나는 그 지형을 잘 압니다. 그곳은 나무를 벤다고 해서 하루 가득 햇살이 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햇살을 온전히 받고 싶다면 산을 모두 파서 옮겨야 할 곳이 그곳의 땅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그가 그저 말을 번지르르 잘하는 사람일 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친환경 녹색 성장’이란 말처럼, 애초에 성립 불가능한 말이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듯, ‘생태적인 마을 조성’이라는 자신의 구호도 그저 스스로를 홀리고 타인을 홀리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마을을 구성할 사람들이 경험한 직업이 화려하다 하여 그들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마을에 붙이는 그럴싸한 용어와 이름만으로 마을이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에너지 자립의 여건만을 갖춘다고 생태적인 건축, 생태적인 마을이 되는 것 역시 아닙니다. 이웃한 나무와 풀과 새와 바람과 물이 나와 연결된 존재임을 이해하고 몸으로 느끼며, 그 안에서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 그것은 포장일 뿐입니다. 포장지만으로는 희망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포장지는 항상 찢어지기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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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규! 이땅 사면 부자되겠는데!
하고 능청을 떨었으니 말이다. 사실 그일이 현실로 돌아 올 것이다. 근처로 큰 도로가 나고 새로운 작은 도시가 만들어지면 자네의 땅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그리고 도시의 부자가 가장 선호하는 땅이 될것이라는 속된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자네는 짐정한 자연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내 자신 스스로 부끄러울 일이다.
그대의 진솔한 마음을 책으로 펴내어 내같은 졸부도 눈을 떳으면 한다.
그리고 강연을 가게 되면 공지하여 한번 들어 보고 싶다.
잔득 흐린 날씨가 백오의 글을 읽으니 밝아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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