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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3년 1월 11일 10시 32분 등록

14세기 중엽

검은 죽음의 병이 세상을 휩쓸 때

팔과 다리가 꺾이는 곳마다 가래톳이 솟고

크고 작은 검은 반점들이 온 몸에 돋아

집마다 거리마다 죽은 사람들로 쌓여갈 때

거룩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인 일곱과

씩씩하고 고귀한 청년 셋이 만나

피렌체 교외의 별장에서 2주일을 보냈지

 

현실이 지옥인 때 그들은 지옥 속에서도 희망을 보고 싶어

맛있는 아침을 먹고

들판을 산책하고

낮잠을 자고

오후 3시가 되면 모여

돌아가며 왕과 여왕을 정해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씩 나누었지

그리고 저녁이 되면 발라드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을 추었지

포도주를 마시며 삶이 다시 죽음의 거리에 찾아들기를 바랐지

주님의 수난일인 금요일은 쉬고 토요일도 조용히 보내고

2주 동안 열흘에 걸쳐 하루에 열 개씩 100개의 이야기를 모아

데카메론이라 불렀다네

 

죠반니 복가치오는 상인의 아들이었으나 타고난 문인이었지요. 정숙하지 못한 여인을 사랑하고 수없이 상처 받은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이윽고 사랑하는 여인도 죽고, 그 여인을 피암메타라고 부르던 복카치오는 여인의 입장에서 여인의 마음으로 여인을 위하여 그 당시 세상을 떠돌던 이야기들을 모으고 각색하고 편집하고 창작하여 책을 내게 되었으니 그 책은 세간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집집마다 여인들이 코를 박고 탐독한 책이 되었습니다. 바로 데카메론이지요.

 

데카메론에는 '갈레오토 공의 이야기' 라는 부재가 붙어 있습니다. 작가가 되어 보니 제목과 부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부재에 등장하는 갈레오토공은 아더왕의 원탁의 기사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호수의 기사 랜슬럿과 아더왕의 왕비 귀네비어 사이의 불륜의 로맨스를 다룬 갈레오토 이야기를 썼지요. 그 속에서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키스가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 중의 하나가 되었지요. 왜냐하면 이 키스 때문에 또 다른 아름다운 불륜이 생겨났거든요.

 

이탈리아 라벤나의 공녀였던 프란체스카는 사기 결혼을 당하게 되는데, 절름발이에 악당인 남편 대신 그 시동생인 파울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은 어느 날 갈레오토 이야기를 함께 읽고 있다가 렌슬롯과 귀네비어가 키스하는 장면에 이르러 더 이상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파울로가 온 몸을 떨며 프란체스카에게 키스를 했기 때문입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 5곡에 이때의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됨으로써 이 두 사람의 로맨스는 세계적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안타깝고도 가슴 아픈 유명한 사랑으로 기억됩니다.

 

언젠가 유쾌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데카메론을 읽으세요. 추하고 끔찍한 이야기에서부터 고귀한 사랑의 이야기까지, 기만과 위선의 가면에서부터 추호의 용서도 없는 엽기의 장면에 이르기 까지 세속의 이야기들을 이리저리 읽으며, 인간이 무엇인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조망하며 웃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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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3 21:50:30 *.97.72.143

유쾌한 사랑이야기 구미가 확~ 당기는데요.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다' 란 말이 참인지 궁금했거든요.ㅋ 이달의 도서로 삼아 바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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