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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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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3일 07시 19분 등록

며칠 전 밤에 이 사람과 함께 걷다 나이를 물었습니다. 서른아홉이라 합니다. 그들의 결혼식에 주례를 선 것이 겨우 얼마 전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청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나이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변함없는 청년입니다.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멋지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젊은 아름다움은 속에서 우러납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물 타지 않은 진국입니다. 그의 눈이 그렇게 맑고 그 웃음이 예쁜 것은 그래서 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그렇게 싱싱한 청년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꿈벗 모임에서였습니다. 우리는 그 프로그램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불렀습니다. 직업적 진로를 놓고 며칠 동안 우리는 밥과 존재의 싸움을 융합시킬 차별적 직업을 창조해 내기 위해 함께 애썼습니다. 미래를 회고하고 꿈을 나누었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우리는 청평의 호수가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오리들이 여럿 떠다니는 호수는 한가롭고 평화로왔지요. 조용히 호수가에 그렇게 앉아 있다 일어서 돌아왔습니다. 이른 아침을 잔뜩 묻힌 채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래도록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나 나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내 옆에 그가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다 간혹 오리들에 대해 한 두 마디 말을 던지는 그 평화로운 공간의 공유가 어떤 경로를 통해 마음으로 스며들어 사라지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날 아침 우리는 평화로움의 맛을 제대로 즐긴 듯 합니다.

나는 사람이 그리워 못사는 사람인가 봅니다. 아름다운 풍경 한 구석에 꼭 사람을 하나 그려 넣어야 그림이 완성된다고 믿는 사람인가 봅니다. 사회성이 떨어져 선뜻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지는 못하지만 좋은 사람들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과 정취 없이는 잘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기획하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연구원들과 오래 가깝게 지내게된 것은 인생을 반이나 넘게 산 다음 얻은 기쁨입니다.

비오는 봄날 아침 그에게 짧은 편지를 씁니다.

"오래 보지 못하다가 강연장에서 뜻밖에 너를 보았을 때 기뻤다. 올해 들어 스스로 네 서재에 '심우당' 尋牛堂이라는 당호를 지어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소를 찾아 나서듯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나서는 것이 배우는 사람의 자세일 것이고 독서의 기쁨일 것이다. 나는 열 개의 그림 중에서 여섯 번째 장면이 좋구나. 잃어버린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가장 즐겁구나. 봄이 되어 새 옷을 입고 맑은 호수에 나가 봄바람에 싸여 되집어 오는 저녁이 아름답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이듦의 즐거움이 또한 나쁘지 않다. 보내준 파이는 잘 먹었다. 네 고운 아내에게 안부를 전해다오.
200931374135683.png

추신; 그리고 강진 다산유물관 바로 앞에 찻집이 하나 있다. 그 집 주인이 전각에 능하다. 네가 원하는 '심우당' 당호를 새겨 달라할 만하다"

IP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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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3 11:15:01 *.180.129.160
첫번째로 댓글을 달게 되었네요.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말씀에 200% 동의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가 소를 몰고 피리를 불며 광화문 네거리로 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가 누구의 친구라도 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사부님의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우리 모두 꼼짝 없는 따라쟁이가 되고 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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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03.13 11:47:18 *.254.7.115
몇 년 전 꿈벗 전체모임에서
아침에 일어나 가부좌를 하고 명상을 하던 그를 기억합니다.
유독 진중하게 사물의 근본을 캐며,
일견 온유해 보이지만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는 데는 가차없는 결단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위 글로 보아, '심우당'을 열 장의 그림으로 그려놓고
소장님의 의견을 여쭈었나 봅니다.
'오래 보지 못하다가'  문득 다가와 근황을 알리는
그 면면한 이어짐이 참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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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9.03.13 12:14:11 *.160.33.149

명석, 아니야.  그가 그림을 보낸 것은 아니야.
내가 그렇다는 것이지.  심우도 10개의 그림 중에서 6 번째 그림이 가장 즐거워 보여  한번 그려보았는데 잘 그려지지 않아  농담같은 그림이 되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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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3 18:27:06 *.180.129.160

 제가 이분을 아는듯 댓글을 달아 누구시냐는 문자를 여러통 받았으나  제가 다른 분으로 추측하였음을 알려 드리는 바이옵니다.  ㅎㅎㅎ  사부님. 오래전의 그 이름난 대 화가가 다시 오신 듯 합니다.  책으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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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3.14 00:41:08 *.220.176.209
강의장에 나타나셨던 분이라 하니 그분이 아닐까 싶네요.

많은 말씀은 나누지 못했지만 분위기로 봐서는 그분일 것 같습니다...

더구나 손에 들고 있던 것 (아마 그게 파이였나 봅니다..)이 있었다는 생각을 돌이켜 보면 더욱 그렇지요.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고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으니 여전히 부족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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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alokita
2009.03.14 11:33:46 *.124.65.73

스승님, 고맙습니다.

올봄, 강진에를 다녀와봐야겠습니다. 그곳에서 남도의 봄과 바람을 느끼고 돌아올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다산 초당의 천일각에서 구강포를 내려다보고, 백련사의 동백꽃도 봐야할테지요? 다시 집어든 선생님의 책, "떠남과 만남"은  훌륭한 여행안내서가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글 본문에는 감히 덧글 달지 못하고, 추신에만 덧글을 남깁니다.)

한명석 선생님,

따뜻한 관심이 고맙습니다. 과찬의 말씀에는 말 더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더하여 변합없이 선생님의 노오란 네 꽃잎(서정주/국화옆에서)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햇빛처럼님 그리고, 앤님

제 인사가 부족했습니다. 시절 인연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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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11:56:55 *.180.129.160

  아닙니다. 저도 꿈 벗 모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덕분에 꿈벗, 김유석이란 성함을 알게 되었네요.
 다음에 뵈면 반갑겠지요.  남녘에는 매화가 한창이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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