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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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밤에 이 사람과 함께 걷다 나이를 물었습니다. 서른아홉이라 합니다. 그들의 결혼식에 주례를 선 것이 겨우 얼마 전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청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나이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변함없는 청년입니다.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멋지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젊은 아름다움은 속에서 우러납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물 타지 않은 진국입니다. 그의 눈이 그렇게 맑고 그 웃음이 예쁜 것은 그래서 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그렇게 싱싱한 청년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꿈벗 모임에서였습니다. 우리는 그 프로그램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불렀습니다. 직업적 진로를 놓고 며칠 동안 우리는 밥과 존재의 싸움을 융합시킬 차별적 직업을 창조해 내기 위해 함께 애썼습니다. 미래를 회고하고 꿈을 나누었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우리는 청평의 호수가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오리들이 여럿 떠다니는 호수는 한가롭고 평화로왔지요. 조용히 호수가에 그렇게 앉아 있다 일어서 돌아왔습니다. 이른 아침을 잔뜩 묻힌 채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래도록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나 나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내 옆에 그가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다 간혹 오리들에 대해 한 두 마디 말을 던지는 그 평화로운 공간의 공유가 어떤 경로를 통해 마음으로 스며들어 사라지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날 아침 우리는 평화로움의 맛을 제대로 즐긴 듯 합니다.
나는 사람이 그리워 못사는 사람인가 봅니다. 아름다운 풍경 한 구석에 꼭 사람을 하나 그려 넣어야 그림이 완성된다고 믿는 사람인가 봅니다. 사회성이 떨어져 선뜻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지는 못하지만 좋은 사람들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과 정취 없이는 잘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기획하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연구원들과 오래 가깝게 지내게된 것은 인생을 반이나 넘게 산 다음 얻은 기쁨입니다.
비오는 봄날 아침 그에게 짧은 편지를 씁니다.
"오래 보지 못하다가 강연장에서 뜻밖에 너를 보았을 때 기뻤다. 올해 들어 스스로 네 서재에 '심우당' 尋牛堂이라는 당호를 지어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소를 찾아 나서듯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나서는 것이 배우는 사람의 자세일 것이고 독서의 기쁨일 것이다. 나는 열 개의 그림 중에서 여섯 번째 장면이 좋구나. 잃어버린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가장 즐겁구나. 봄이 되어 새 옷을 입고 맑은 호수에 나가 봄바람에 싸여 되집어 오는 저녁이 아름답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이듦의 즐거움이 또한 나쁘지 않다. 보내준 파이는 잘 먹었다. 네 고운 아내에게 안부를 전해다오.
추신; 그리고 강진 다산유물관 바로 앞에 찻집이 하나 있다. 그 집 주인이 전각에 능하다. 네가 원하는 '심우당' 당호를 새겨 달라할 만하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올봄, 강진에를 다녀와봐야겠습니다. 그곳에서 남도의 봄과 바람을 느끼고 돌아올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다산 초당의 천일각에서 구강포를 내려다보고, 백련사의 동백꽃도 봐야할테지요? 다시 집어든 선생님의 책, "떠남과 만남"은 훌륭한 여행안내서가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글 본문에는 감히 덧글 달지 못하고, 추신에만 덧글을 남깁니다.)
한명석 선생님,
따뜻한 관심이 고맙습니다. 과찬의 말씀에는 말 더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더하여 변합없이 선생님의 노오란 네 꽃잎(서정주/국화옆에서)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햇빛처럼님 그리고, 앤님
제 인사가 부족했습니다. 시절 인연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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