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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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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23일 07시 13분 등록
그는 45살이었습니다. 적어도 며칠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는 거래처의 과장입니다. 나는 그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의 환한 미소 덕분일 겁니다. 그는 우연히 마주치면 깜짝 놀랄 만큼 커다란 웃음과 함께 따뜻한 악수를 건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서 말기의 폐암을 발견한 것은 지난 늦여름이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가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서야 동료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거짓말 같은 슬픈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 밤이 지나면 차갑게 식은 그의 몸은 병원을 떠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에게 일어난 것인지 아직도 실감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에게는 젊은 아내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아내와 아이들을 걱정했을 그의 마음을 아프게 떠올려봅니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해주었을까요?

2년 전의 기억이 주섬주섬 떠올랐습니다.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어 오리엔테이션을 떠나기에 앞서 우리에게는 한 가지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자신의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을 위한 5분짜리 연설을 준비하라는 것이었지요. 이 묵직한 숙제를 들고 우리는 남해의 바닷가에 모였습니다. 흔들리는 촛불을 앞에 두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준비해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웃었고, 또 함께 울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한결 솔직해질 수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경제적인 성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실패에 대한 후회보다는 도전해보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놓았습니다.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던, 심지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자신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끝까지 가보지 못하고 중도에서 멈추어버린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했던 감사와 미안함을 고백했습니다. 그 때의 그 흔적들이 아직도 게시판의 한 구석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심난한 마음을 다독이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사리 잠이 들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올지도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온 마음을 휘젓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부스스 일어나 고개를 돌리니 쌔근대며 자고 있는 아들 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렇군요.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인생에 후회 따위는 남기지 말아야겠습니다. 곤히 잠든 아내의 품 속을 파고 듭니다. 그제서야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마음만은 하루 종일 그 주변을 서성일 것 같습니다. 나는 오래도록 환한 미소의 45살로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가 정말 좋은 곳으로 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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