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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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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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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30일 10시 26분 등록
‘퇴근 후 시간되면, 소주 한 잔 살래?’

술 먹자는 연락치고는 참 소심한 문자 한 통이 날아들었습니다. 퇴근을 하려고 짐을 챙기던 중이었지만 별다른 망설임 없이 그러자고 답을 보냈습니다. 이처럼 급하게 생기는 약속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만은 예외입니다. 문자의 주인공이 친한 친구인 탓도 있지만 오늘은 사실 그 친구가 처한 상황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녁을 차려뒀다는 아내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외국계 회사에서 경력을 쌓아가던 친구에게 지난 해 말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회사의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한국 사무소를 폐쇄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던 모양입니다.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크게 걱정은 안 했답니다. 엔지니어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잘 닦아온 경력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그런 것들은 다시 일자리를 찾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취직은 고사하고 면접 볼 기회조차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는 그렇게 말 그대로 백수가 되었습니다.

불빛을 담아 흔들리는 소주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마주 앉았습니다. 웃을 때마다 눈으로 반달을 그려내는 친구의 살인 미소는 그대로인데, 어쩐지 마음이 짠합니다. 술자리의 뻔한 이야기 대신에 우리는 진지하게 대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외국계 회사에서 일했으면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던 친구의 영어 실력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기술은 자신 있으니 영어 실력만 조금 높이면 금새 취직이 될 거라고 친구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런저런 충고와 조언이 술술 잘도 쏟아졌습니다. 그 동안 주워들은 어설픈 지식들을 동기부여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엮어서 친구의 마음을 뒤적거렸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듣던 친구의 입에서 힘없는 한마디가 떨어졌습니다.

“맞아, 난 정신 좀 차려야 해.”

슬그머니 친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형이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벌어놓은 돈을 몽땅 주고 처가에 신혼 살림을 차린 친구입니다. 그러고도 마음 불편해할 형을 걱정하던 착한 녀석입니다. 처가살이하는 애 딸린 유부남이 직장을 잃었으니 그 처량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보다 더 강렬한 동기부여가 있을까요? 구직 사이트에서 자신의 이력서를 조회한 회사의 채용 담당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자신을 알리는 적극적인 구직자입니다. 어떻게 이보다 치열할 수 있을까요? 제 충고와 조언은 그저 배부른 얼치기의 할리우드 액션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정말로 잘하고 있었습니다.

술이 거하게 취한 우리 둘은 거리로 나섰습니다. 잘 지내라며 내미는 손을 밀쳐내고 녀석을 덥석 끌어안았습니다. 커다란 덩치가 품 안에 쏙 들어왔습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작게 말해주었습니다. 이 녀석, 그제서야 머뭇거리며 한 마디 합니다.

“그래. 나, 그 말이 듣고 싶었다.”

흔들리는 불빛 아래로 비척거리며 멀어지는 친구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서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솟을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주먹을 꼭 쥐고 친구를 위한 주문을 외워봅니다.

‘친구야, 힘내라.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마. 다 잘 될 거야. 하쿠나 마타타.’
IP *.96.1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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