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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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그는 나를 찾아 왔습니다. 우리는 달빛을 받으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밤이 깊어지는 동안 달이 궤도를 따라 높아지면 우리도 술상을 옮겨 달빛을 따라가며 술을 마셨지요. 그리고 그는 모험을 떠났습니다.
그는 프로그램된 모험을 거부했습니다. 롤러코스트의 함성과 영화 속의 전율이 일상의 모험을 대신하게 하는 대신 비 속을 걷고 땀이 비오듯 하는 진짜 모험은 일상 속으로 불러들인 것이지요. 땀 조차 유리창으로 격리된 헬스클럽의 운동기구 위에서 만들어 내야하는 육체의 결핍 시대에 진짜 모험을 떠났지요. 가지고 있던 서울의 집을 팔고, 작은 회사의 CEO라는 직함을 버리고, 자신의 꿈을 따라 괴산의 사오랑이라는 마을에 작은 산을 하나 사서 떠나갔습니다. 그곳에 그는 '행복숲'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뻔한 인생 속에 모험의 흥분과 두려움을 불러들인 것이지요.
그가 떠난 후, 몇 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그곳에 자신의 집을 하나 지었습니다. 열 평이나 될까요? 몇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제 손으로 직접 집을 지었지요. 자신의 손과 육체를 가지고 제 살 집을 처음 지은 것이지요. 제 손으로 뭔가를 직접해 보는 원시의 생명력으로 복귀한 것입니다. 집을 짓고 보니 유리창을 살 돈이 없었답니다. 한 사람이 선뜻 유리창 값을 대 주었습니다. 커다란 유리창이 시원한 그의 집 좌탁 앞에 앉으면 아름다운 군자산의 등자락이 멀리 평화롭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농부가 되고 숲 생태지기가 되고 작가가 되어 삽니다. 열 평 짜리 집이 제 손으로 지어지고, 그의 첫 책이 그 집에서 씌어져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는 내게 그 책의 추천사를 부탁했습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으로 써 낸 진짜 책에 나를 초대해 준 것이니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곳에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살지 않는 사나움이 있다. 성공한 세속의 인물들에서 피곤한 비법을 배우는 대신 숲에게 길을 물어 사람이 사는 법을 배운다"
오늘 아침에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짧은 편지를 씁니다.
" 그대는 '남들이 요구하고 사회가 허용하는 축소된 존재'로 사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하여 모험의 길로 나섰다. 두려움과 흥분이 같이 했고, 비로소 살아 있다는 떨림을 느끼게 되었다. 따가운 햇살 아래서 땅을 파고 그 흙냄새를 코로 맡을 수 있다는 것, 내가 창조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흥분, 이 순간 나를 만지고 느낄 수 있다는, 이 살아있는 육체의 기쁨을 핥았을 것이다. 쉰 살이 되기도 전에 늙지도 젊지도 않은 수 많은 사람들이 있던 곳을 나와 방황할 때, 마흔을 조금 넘어 이제 남은 삶을 다 쏟아 바칠 곳이 있으니 크게 축하할 일이다. 네 삶은 크게 기쁠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이 다른 이의 평화를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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