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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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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9일 07시 42분 등록


나의 산방에는 몇 개의 화분이 있습니다. 주방과 거실을 구분하는 공간에 네 개, 화장실 변기에서 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나 있는 창가에 두 개가 놓여있습니다. 산방 입주를 축하하며 지인이 가져다 준 화분입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이곳에서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두 녀석이 지난 겨울을 죽을 만큼 힘겨워 했습니다.

마삭줄이라는 이름의 식물은 조금씩 시들더니 어느 순간 잎을 모두 떨구고 마침내 죽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툭 잘라 화분에 꽂기만 해도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번식을 할 수 있는 왕성한 생장 능력을 지닌 얼룩자주달개비도 거의 모든 줄기가 시들어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원인은 아마 농장용 포트에 담겨있던 녀석들을 이곳 마당의 흙을 퍼 담아 새로운 화분으로 옮겨 심은 탓이었을 것입니다. 수분을 얻는 주기도 달라지고 토양의 영양분과 그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도 달라졌는데, 두 녀석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을 것입니다.

조금씩 시들다가 마침내 죽은 것처럼 보일 즈음, 화분을 선물한 분이 다시 산방을 찾았습니다. 그 분은 마음 아파하며 그들을 버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말자고 했습니다. 단 하나의 초록색 잎도 남겨져 있지 않은 마삭줄에 아주 작은 잎눈이 살아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쇠락할 대로 쇠락한 얼룩자주달개비에 아직 가녀린 뿌리와 잎 두 조각이 남아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한달 쯤 지난 요즘, 두 화분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죽은 것 같던 마삭줄의 줄기에 여덟 장의 새 잎이 돋았고, 다시 살지 못할 것 같던 얼룩자주달개비가 네 개의 새 줄기를 뽑아 선명한 잎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그들이 지금 재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온실을 나와서 거친 들판의 토양을 얻었을 때, 그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가 너무 힘겨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들고 쇠락하고 마침내 죽기 직전까지 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그들이 새롭게 살기 위해 벌인 눈물겨운 사투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원활하지 못한 수분과 영양공급, 생경한 미생물 파트너와의 관계를 견디고 재편하기 위해 그들은 그간 뽑아 올린 잎을 지우는 일부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갑자기 척박해진 환경을 견디고 적응하기 위해 더 이상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과도한 잎을 제거함으로써 부족한 양분과 수분을 견디고자 했던 것입니다. 지금 내놓는 저 새로운 줄기와 싹은 마침내 척박함을 이겨 새로운 자신을 세우고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 또한 저들처럼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입술을 깨물고 참아내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차라리 가진 모든 것을 스스로 버리고 녹다운(Knock-down)의 지경에 까지 이르러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잘 버려 새로워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재기하고 싶다면 한동안 바닥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재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 통증을 마땅히 수용하고 사랑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사는 이들보다, 그렇게 넘어져 다시 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향기를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저들 두 화분이 각별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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