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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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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6일 06시 02분 등록



첫 책을 낸 뒤, 이러저러한 일정으로 일주일쯤 산방을 비웠습니다. 어젯밤 늦게야 산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늦은 아침 깨어나 숲을 바라보니 뒷산의 숲이 집 비우던 날의 숲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이 숲은 홀로 보기 아까운 풍경으로 가득합니다.

길섶의 낮은 자리에는 한 뼘도 안 되는 노란색 꽃다지의 꽃들이 어느새 열매를 만들어 두었고, 냉이는 부쩍 키가 실해져 일찍 핀 꽃들은 어느새 심장모양의 열매로 변해 있었습니다. 숲의 중심부는 중심다운 욕망으로 화려합니다. 낙엽송은 새 잎을 내어 초록물감을 뒤집어썼고, 느티나무는 연두색 물감을 휘저어 생기를 찾았습니다. 숲 가장자리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조팝나무는 그 작은 흰색의 꽃들을 일거에 피워 봄눈처럼 하얀 이불을 만들어 덮었고, 찔레는 파릇한 새순으로 봄비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숲의 백미는 산벚나무와 개복숭아나무들이 피운 꽃들의 모습입니다. 산벚나무들은 지금 희거나 연분홍색인 꽃을 제 선 자리 곳곳에서 피워대느라 아우성입니다. 그들이 피운 꽃의 띠를 연결하면 꽃이 마치 숲의 허리를 두르는 벨트처럼 보입니다. 개복숭아들은 한결 야한 깊이의 분홍색 꽃을 피워 시선을 잡아당깁니다. 그들은 지금 이 숲 가장자리의 주인공입니다. 이제부터 산방 뒤에 가져다 놓은 벌통의 벌들은 끊임없는 노동으로 바쁠 것입니다.

이 좋은 봄날, 읍내에 볼일이 있어 산방을 나섰습니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을 만나 차로 모시고 갔습니다. 각자 일을 본 뒤 장터에서 국밥 한 그릇을 대접해 드리고 함께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마다 곳곳이 훌륭한 봄 풍경으로 가득했습니다. 산벚나무들의 꽃에 취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내게 어르신이 “저거 다 베야 혀!” 하십니다. “아 저 눔덜이 너무 왕성해서 소나무가 다 사라지고 있잖여!” 하십니다.

산방으로 돌아와 나는 다시 이 숲을 보고 있습니다. 소나무를 중시하느라 다른 나무를 적당히 베어내야 한다는 어르신의 말씀을 생각하는 중입니다. 어르신의 말씀이 오늘 하루 내게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도심 조경수로 수천만 원, 수억 원을 호가할 만큼 우리들의 정서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나무,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 다른 나무들을 솎아 베어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우리 문화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무자비한 불감증에 현기증이 나는군요. 우리 문화 곳곳에 홀로 보기 아까운 풍경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을 텐데, 이 무자비한 불감증 때문에 우리 문화는 점점 더 쇠하는 것이 아닌가 한탄하게 되는군요.

소나무만 들어선 단순한 숲에서는 지금 저토록 불타는 봄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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