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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7일 06시 21분 등록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가 경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다음 나는 그에게 달력을 보라 했습니다. 12월 첫째 주 달력을 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며칠 놀러 가지 않겠느냐고 그랬습니다. 전화 넘어 그가 달력을 보는 것 같더니 매우 당황스럽게 말합니다. "어, 이거 안되는데" 그럽니다. 그리고 웅얼웅얼 혼자말처럼 무어라고 합니다. 나는 잘 알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가 안되면 방학이 시작되면 그때 하자 그랬습니다. 그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아마 그것도 안되는 모양입니다.

나는 당황했습니다. 우린 서로 거절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딱 맞는 주파수처럼 서로 맞아 증폭되는 바이브레이션에 박수를 치듯 좋아하곤 했으니까요. 알 수 없는 침묵과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왜 그러는 지 몰라 내가 전화에 대고 몇 번 다시 언제가 좋은 지 물었습니다. 여전히 대답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깼습니다. 오늘 새벽에 꾼 꿈입니다.


그는 몇 년전 쓰러져 지금껏 누워 있습니다. 그 후 나는 그와 술을 마실 수도 없고,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날 수도 없습니다. 함께 걸을 수도 없고 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없습니다. 내 삶은 그가 아무 말 없이 누워 있는 만큼 쓸쓸해 졌습니다.

쉰 살이 넘어 그와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된 다음 나는 두려워 진 듯 합니다. 가지가 하나 잘린 나무처럼 쓸쓸함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오래 잡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내향적이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번거로워 하는 내가 최근 몇 년간 사람을 탐하듯 좋은 사람들을 찾아 애정을 쏟아 온 것도 어쩌면 그 두려움에 대한 반응이었나 봅니다.

이 새벽에 다시 깨닫게 됩니다. 무엇을 얻게 되었고 무엇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은 인생 전체로 보아 어쩌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닌 듯 합니다.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은 누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그에게 짧은 편지를 보냅니다.


"너에게 가마. 이 편지 보다 더 빨리 너에게 가마. 술상을 볼 것이다. 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커다란 산벚나무 아래서 술을 한 잔 하자. 술잔에 꽃잎이 하나 떨어 질 때 마다 모두 마시기로 하자. 나에게 이야기 해 다오. 네가 알고 있는 재미있는 모든 이야기들을. 사랑에 대하여 야망에 대하여 분노에 대하여 시시함에 대하여 그러나 아름다움에 대하여.

나는 조용히 들을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동조하고 때때로 너를 놀려 줄 것이다. 웃음과 꽃잎 속에서 우리는 그믐달 지는 새벽쯤 일어나 술상을 접을 것이다. 참 좋은 봄이다. 너에게 아직 떨어지지 않은 꽃으로 가득한 작은 벚나무 가지를 하나 꺾어다 주마. 화사한 봄을 머리맡에 두도록 해라. 이 편지 보다 빨리 너에게 가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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