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신종윤
  • 조회 수 303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9년 5월 4일 13시 06분 등록
회사 체육 행사를 위해 북한산으로 향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키지 않는 등산이었지만 일단 산의 초입에 서자 기분이 제법 괜찮았습니다. 오랜만의 산행에 대한 약간의 흥분도 상쾌했고, 촉촉한 아침 산의 기운이 몸을 휘감는 감촉도 시원했습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며 동시에 산행을 시작했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오르는 통에 얼마 안 가서 모두 흩어졌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갈림길을 하나 만났습니다. 이미 사람들이 줄지어 오른쪽 길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었고, 뒤를 따라오던 사람들 역시 멈칫거리는 저를 스쳐지나 오른쪽 대열로 합류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제 눈엔 왼쪽길이 맞는 것만 같았습니다. 지도랍시고 손에 들고 있던 종이 조각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제가 서있는 자리조차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매번 갈림길에 서서 오만 가지 걱정을 다했습니다. 작은 실수도 피하겠다는 무모한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지요. 모든 시작은 불완전하다는 진리를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완전한 시작이라는 허상에 갇혀서 갈림길 주변을 안절부절 서성이다 주저앉곤 했습니다. 그 버릇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잠시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다 보니 문득 오기가 솟았습니다. ‘이 작은 산에서 어디로 간들 길을 잃을 것도 아닌데……’하는 소박한 용기였지요. 그렇게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떼자 작은 모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인적 드문 산길을 혼자 걸으려니 처음에는 으스스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묘한 쾌감이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흐린 하늘 아래 눈부시게 흐드러진 철쭉도 끝내줬고, 바로 머리 위 나무 가지로 날아와 기묘하게 노래하는 새소리도 황홀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만의 보폭으로 걸을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갈림길에서 머리 속을 어지럽혔던 우스운 이유들은 시원한 바람에 실려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렇게 조금 외롭지만 달콤 쌉사름한 자유의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혼자만의 산행을 즐겼습니다.

전혀 다른 길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길이 다시 이어지고 결국 정상에 닿았습니다. 산 속의 길은 그렇게 다 통하는 모양입니다. 산을 내려와서 예약된 식당으로 들어서자 동료가 왜 이제야 왔냐며 의아해합니다. 불과 10여분 일찍 도착했다는 동료의 질문이 오히려 신기합니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마음 속 한마디가 미끄러져나옵니다.

“그저 조금 돌아왔을 뿐이야.”

이 말 괜찮네요. 우리가 두려워하는 실패는 조금 돌아가는 길에 붙여진 거창한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갈림길에 선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IP *.96.12.13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56 [화요편지]삶의 기쁨이 깨어나는 시간, 아난다 인요가 file 아난다 2020.12.22 6326
655 같이 오른다는 것에 관하여 (데날리 이야기) [2] 장재용 2020.12.22 1644
654 크리스마스 운제 2020.12.24 1443
653 [용기충전소] 매일 매일이 새로워지는 비법 file [1] 김글리 2020.12.25 2106
652 [변화경영연구소] [월요편지 40] 은퇴 후 나는 무엇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1] 습관의 완성 2020.12.27 1771
651 [화요편지]가장 사랑하는 그들이 나를 아프게 할 때 file [2] 아난다 2020.12.29 1852
650 캐나다 록키산맥 Mt. Cascade 등반기 [1] 장재용 2020.12.29 1582
649 마지막 편지 [4] 운제 2020.12.31 1575
648 [변화경영연구소] [월요편지 41] 꿈을 찾아 퇴사부터 하려는 당신에게 [2] 습관의 완성 2021.01.03 1862
647 [화요편지] 책 속에는 답이 없다, 그러나 file [2] 아난다 2021.01.05 2098
646 에트나(Mt. Etna)에 있드나 [1] 장재용 2021.01.05 1941
645 목요편지를 시작하며 [2] 어니언 2021.01.07 1358
644 [용기충전소] 불안을 친구로 만들기 김글리 2021.01.08 1449
643 [알로하의 두번째 편지] 깨져야만 알게 되는 것들 file 알로하 2021.01.10 2141
642 [월요편지 42] 미래에서 온 아버지의 첫 편지 [1] 습관의 완성 2021.01.10 1651
641 [화요편지]'책 속에는 정말 답이 없는 거냐'고 묻는 당신에게 [2] 아난다 2021.01.12 1598
640 수틀리면 터져버리는 그녀, 에트나처럼 [1] 장재용 2021.01.13 1625
639 [목요편지]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하다 [3] 어니언 2021.01.14 1174
638 [용기충전소] 거북이가 이긴 이유 [1] 김글리 2021.01.15 1973
637 [알로하의 두번째 편지] 아프니까 프로다 [2] 알로하 2021.01.17 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