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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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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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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7일 07시 52분 등록


그대 어젯밤, 달을 보셨는지요? 보름을 향해 가는 달이 무척 좋았습니다. 산방 맞은 편으로 예쁘게 떠오른 상현달은 아직 서산에 햇살이 남았는데도 그 운치가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달을 보며 장화를 신고 마당과 밭을 돌아보았습니다. 늦게 심은 감나무 몇 주가 새싹을 틔우고 있었고, 매실은 한낮의 햇살을 저장하며 제 살집을 불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해 스승님이 선물해 주신 겁 많은 배롱나무에도 어느새 잎이 돋았습니다. 하지만 대추나무는 아직도 겁을 먹고 있는지 도무지 잎을 내지 않습니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그 저녁 시간을 나는 무척 좋아합니다. 빛이 소멸하며 어둠으로 바뀌기 전인 이때, 가끔 하늘은 더욱 파랗게 보이고 바람의 흐름도 방향을 바꿉니다. 집 나갔던 밭 쥐도 제 굴을 찾아 들고, 벌들의 노동도 휴식으로 전환됩니다. 땅을 기는 거미들의 종종 걸음도 안식으로 향합니다. 이 시간은 내가 숲의 고요를 더욱 빛나게 하는 새들의 노랫가락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밭과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입니다. 나를 마주할 준비를 하는 시간입니다.

이렇듯 봄이 깊어진 숲의 저녁을 거닐다가 알게 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노래하는 새들의 주인공이 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특별히 아름다운 새소리가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맞습니다. 철새들이 합류했기 때문입니다. 이 숲에 뻐꾸기와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꾀꼬리 소리도 가까워졌고, 소쩍새 우는 소리도 선명해졌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꿩- 꿩- 울던 꿩들의 외마디 가락이 이 숲의 으뜸이었지만, 이제는 그 소리도 저들 철새에게 묻히고 맙니다.

아, 새들의 합창으로 숲의 고요가 더욱 빛나는 이 시간. 숲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사방을 채우는 저 많은 철새들의 노랫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분명, 봄이 농염한 이 즈음 철새들은 그 노랫소리가 특별히 아름답습니다. 대체로 텃새들의 그것이 비교적 단조로운 반면, 철새들의 소리는 특별한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낮 시간, 아무리 많은 텃새들이 지저귀더라도 노란색 꾀꼬리 한 마리가 울어대면 오직 그 소리가 마음을 당깁니다. 검은등뻐꾸기도 그렇고 소쩍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텃새들을 뛰어넘는 철새들의 그 유별한 아름다운 소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나는 그것을 그들이 유목민처럼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다시 옮겨 다녀야 하는 이유에서 찾고 있습니다. 생명들의 정주는 안정을 희구한 욕망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편안함을 얻는 대신 상대적으로 단조롭습니다. 반면 유목은 모험을 희구한 욕망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위험을 대면하는 대신 흥분을 먹습니다.
여름 철새는 깊어진 봄에 날아와 여름 한 철 제 짝을 찾고 사랑을 나누어 그 결실을 챙겨야 합니다. 텃새들과 달리 그들은 또 떠나야 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노랫소리는 텃새들의 그것에 묻혀서는 안될 것입니다. 짧은 기간 내에 자신의 사랑을 챙겨야만 자신을 실현할 수 있기에, 그들은 더 특별하고 파장이 긴 소리를 키워왔을 것입니다.

요즈음 이 숲은 철새들의 노마디즘이 빚어내는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어쩌면 노마디즘 이야말로 누군가를 번영하게 하는 원형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들의 노랫가락에 취하다 보니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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