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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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커피숍에 들어서자 주변의 이목이 집중됩니다. 검은 슬랙스가 잘 어울리는 큰 키의 그녀는 이미 50대 중반입니다. 하지만 활달한 몸짓과 경쾌한 말투로 본다면 그녀를 50대라고 짐작하기는 어렵습니다. 미용실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오래전부터 미용실과 피부 관리실을 운영해왔습니다. 우연히 그녀가 제게 자신이 살아 온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계기가 되어 첫 인터뷰는 전년도 9월에 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보강하느라 팔 개월 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활력이 넘칩니다.
지난주에 명동에서 홍대까지 타고 가는 버스 안에서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가 섞여 들려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노라니 문득 타국에 머물 때 매일저녁, 다운타운에서 출퇴근을 하던 버스 안의 풍경이 되살아났습니다. 그 버스 안에는 중국인, 일본인, 캐나다인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느라 늘 왁자했습니다. 그 버스 안에서 소수민족인 한국인, 다시 말해 모국어를 듣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들의 고유한 리듬이 실린 말을 들으며 제가 느낀 것은 지독한 단절감이었습니다. 당연히 모국어가 몹시도 그리웠지요.
“남편과 30년 넘게 사는 세월이 마치 문화가 다른 외국인과 사는 느낌으로 살았는데 이제 야 소통이 된 느낌이에요.” 인터뷰 중에 그녀가 한 말입니다. 타국어가 아닌 모국어를 쓰면서 삼십년 넘게 단절된 느낌으로 살아 온 세월은 어떤 빛깔일까요. 사업실패로 까맣게 타들어간 그녀의 가슴에 열정이 되살아난 것도 다름아닌 남편의 따듯한 말 덕분이었습니다. 이해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된 순간, 그녀의 가슴에 남아 있던 불씨에 불이 지펴진 것입니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보시려면 클릭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어요. 혼자만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마음을 담는다고 다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서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더군요. 가족이 내 마음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큰 힘이었습니다. 경제적 위기가 와서 이혼한다는 것은 명분일 뿐, 이미 그 이전부터 두 사람사이에 오랜 불통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두 사람사이에 신뢰만 있다면, 위기가 닥쳤을 때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다국적 복합민족주의가 되어가는 모양새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따듯한 미소라도 보여 준다면 소통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제가 배운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 이윽고는 응원에 힘입어 포기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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