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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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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4일 09시 37분 등록


1.
지난 주말 딸 혜린이가 산방을 찾아왔습니다. 녀석은 훌쩍 성장한 산이, 바다와 함께 마당과 밭과 뒤뜰을 누비며 놀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한동안 마루 위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해가 지고 더위가 가신 뒤에 우리는 두어 이랑쯤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고구마를 심어보는 녀석은 몇 번이고 ‘힘들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날 오전, 집 뒤에 놓은 벌통에서 분봉(分蜂)이 있었습니다. 봄이 한 복판을 통과할 즈음, 기존의 벌통에서는 새로운 여왕벌이 탄생합니다. 그렇게 되면 오래된 여왕벌은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를 이끌고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섭니다. 이것을 분봉이라고 합니다. 나는 벌을 쳐본 경험이 없습니다. 분봉하는 벌을 받아 새로운 벌통에 앉혀야 벌통의 숫자가 늘고, 따라서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데, 나는 이 중요한 분봉을 다루어 본적이 없는 것입니다.

여하튼 나는 느닷없이 분봉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수많은 일벌들의 군무에 이어 여왕벌이 뽕나무의 죽은 가지에 앉았습니다. 일벌들이 여왕벌을 온몸으로 감싸기 시작했고, 이내 커다란 덩어리로 뭉쳐 있었습니다. 이제 내가 그 벌들을 새로운 벌통으로 받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벌들은 몇 시간 동안 그렇게 매달려 있다가 야생의 새로운 거처를 찾아 떠날 것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는 벌 농사에서 상당한 손실을 보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며칠 전 아랫마을 한 어르신이 벌을 받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새 벌통의 뚜껑에 약간의 꿀을 바르고, ‘두레- 두레-‘라고 외치며 쑥을 이용해 벌들이 뚜껑 속으로 들어가도록 유도하던 모습이었습니다. 놀랍게도 10여분 만에 대부분의 벌이 새 벌통의 뚜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기억은 생생했으나 직접 하자니 두려웠습니다. 과연 나는 어떻게 했을까요?

2.
첫 책, 《숲에게 길을 묻다》를 세상에 선보인 지 한 달을 조금 넘겼습니다. 그간 몇 차례 인터뷰를 했습니다. 얼마 전 어느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걷던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 위에 섰다. 혹시 그 새로운 길의 끝까지 걸어가보았는데도 그 곳에 당신이 꿈꾸던 삶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두렵지는 않은가?” 나는 망설임 없이 “두렵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껴안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배우고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배우는 것이 삶이란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믿음이고, 내가 희망을 만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희망은 두려움 너머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마다 두려움을 다루는 원칙을 세워두어야 합니다. 내게 있어 두려움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행하는 것입니다. 걸음마를 공부한 뒤에 걷는 아이는 없습니다. 걸으면서 배우는 것이 걸음마입니다. 아이는 종종 넘어집니다. 몇 번을 넘어진 뒤에야 넘어지지 않고 걷는 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었다 해서 삶이 어찌 이와 다르겠습니까! 배우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면서 배우는 것이 인생 아닐지요?

나는 분봉한 벌을 받아냈습니다.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그냥 받았습니다. 내가 태어나는 순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직접 받아 나의 탯줄을 자르셨다는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그 순간 딸 혜린에게 사진을 찍게 했습니다. 녀석이 어느 갈림길에서 고구마 심기의 고단함과 벌을 받을 때의 두려움을 기억할까요? 삶이 고될지라도 행하면서 배우는 것이 삶임을 또한 기억할까요? 가을의 꿀과 고구마를 얻는 방법이 거기에 있었음을 기억할까요? 나의 대답은 “물론이죠!” 입니다. 그대의 대답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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