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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5일 08시 40분 등록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사연을 담다 보면 혹시나 불편할까하여 웬만하면 실명을 밝히지 않는 것이 이 편지를 쓸 때의 간단한 자기 규칙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 규칙을 깰까 합니다. 왜냐하면 이름 자체가 곧 그녀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춘희입니다. 봄처녀라는 뜻이지요. 그녀 아버지가 지었다는 그 이름 때문에 속상할 때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 그 이름에 잘 어울립니다. 낳자마자 아버지가 그 자식의 운명을 꿰뚫어 본 모양입니다. 그녀는 정말 웃깁니다.

놀러 가면 산과 들에서 나물을 캡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시를 읊으라고 합니다. 머리에 커다란 함지박을 얹고 걸어도 너무 잘 어울립니다. 작년 여름에는 뉴질랜드의 남섬을 캠퍼밴을 타고 여럿이 여행한 적이 있었는 데, 달이 가득한 호수에 취해 겨울 호수 물가를 맨발로 소리치며 뛰어 다녔습니다. 그러다 말려니 하지만 절대 그만 안둡니다. 달이 위치를 바꿀 때 까지 아마 한 반시간은 그렇게 뛰어 다닌 모양입니다. 그러니 밥도 많이 먹습니다. 언제나 한 공기를 추가 합니다.

그녀의 고향은 안동에서도 굽이굽이 알 수 없는 산속으로 깊이 들어 가다보면 나온다는 골새앙바드레 라는 곳입니다. 난 이 이름을 외우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어쨌든 어렸을 때 그녀는 동생과 함께 매일 1 시간 정도를 걸어 고개 넘고 개울 건너 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있는 곳에는 들이나 산냄새가 납니다. 그녀 안에는 그 때의 아이가 들어 있습니다. 언제고 그 아이로 되돌아 갈 수 있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 자체가 꽃 피고, 새 울고, 벌이 윙윙대는 봄입니다. 오늘 그녀에게 짧은 편지를 씁니다.

"춘희야, 네가 애써 모으고 엮은 시집이 나왔구나. 작년 봄 설악산 비선대 아래 계곡에서 모두 준비한 시 하나씩을 읽게 하더니, 이윽고 시축제를 열고, 그 바람 속 꽃잎 같은 시들을 모아 예쁜 시집으로 만들어 냈구나. 사람들이 읽고 '나도 다시 한 번 잘 살아 봐야겠다' 힘을 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시든 가슴을 봄으로 가득 채우고, 한때 잘못된 길을 가던 사람들이 가던 길을 되돌아 올 용기 하나 되었으면 좋겠다. 시인들이 피로 쓴 시들을 우리는 영혼으로 읽는구나. "

공지사항 : '내 인생의 시 한편'이라는 주제로 작년 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마주친 그리운 시 한 편씩을 모집했었습니다. 그 중 사연이 특별한 마흔 여섯 편의 시들이 엮여 '시야, 너는 참 아름답구나' 라는 제목으로 출간 되었습니다. 봄이 다 가버리기 전에... 차마 이 시들을 그냥 놓아 보내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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