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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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흠뻑 젖은 채로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더니, 온종일 골치 아픈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설마 했던 우려가 점차 현실이 되어감에 따라 감정이 소용돌이쳤습니다. 처음에는 부정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이번엔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진작에 조치를 취했더라면 이런 상황은 막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때늦은 후회도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체념했습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면 걱정하지 말라고 쉽게들 이야기합니다. 그 말이 맞지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더군요. 상황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가 독이 되어 끈질기게 머리를 어지럽혔습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느끼지 못할 만큼 정신 없이 해결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했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지난 밤부터 속을 끓인 탓인지 퇴근 지하철에 오르자 선채로 골아 떨어졌습니다. 잠이 든 것도 같고, 깨어있는 것도 같은 멍한 순간에 노자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거센 바람은 아침 한나절을 불지 못하고 (故飇風不終朝)
퍼붓는 비도 하루 종일 내리지는 못한다. (驟雨不終日)
시간은 흐르고, 비와 바람은 그치겠지요. 이미 맞은 비야 어쩔 수 없더라도 다음 번 비를 위한 우산 하나는 꼭 마련해두어야겠습니다. 달라진 건 없지만 마음만은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지하철역을 빠져 나와 우산을 펼치는 순간 우산살 하나가 속절없이 부러져버렸습니다. 별게 다 심기를 건드립니다. 보통 우산으로는 부족하다는 신호인가 봅니다. 허름한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하는데, 평소 같았으면 무심히 스쳤을 꽃집이 눈길을 당깁니다.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백합처럼 생긴 꽃을 한 다발 샀습니다. 꽃 이름이 ‘솔로몬’이랍니다. 향이 아주 좋습니다. 한 손엔 꺾어진 우산을, 다른 한 손엔 제법 큼직한 꽃다발을 들고 다시 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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