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 조회 수 3287
  • 댓글 수 7
  • 추천 수 0
2009년 6월 11일 08시 45분 등록

P1010187.jpg

우리 마을의 논 대부분에 벼 심기가 끝났습니다. 그대 아시듯, 벼는 논에 심습니다. 녀석들이 물을 좋아하는 식물로 길들여진 탓입니다. 논은 땅 위에 물을 가두어 둔 곳으로 녀석들의 생육에 최적인 공간입니다. 그런데 만약 벼를 밭에 심으면 어떻게 될까요?

 

밭은 오히려 배수가 잘 되는 곳입니다. 따라서 물을 좋아하는 벼에게 밭은 사막과도 같은 스트레스 환경일 것입니다. 많은 벼는 갈증과 대항하다가 꽃도 피우기 전에 시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제 삶을 지키고 이겨내는 벼가 있습니다. 그 사막과도 같은 땅에서 목마름을 견디고 벼 꽃을 피우며 이삭을 맺는 녀석들은 무엇이 다를까요?

 

지난해 나는 밭에 벼를 심은 적이 있어 압니다. 밭에서 살아남는 벼는 먼저 그 척박함을 이겨내는 교두보를 뿌리에 구축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뿌리에 근모(根毛, root hair)라고 부르는 아주 많은 털을 만듭니다. 근모는 다른 세포와 달리 액포를 키우고 세포벽을 얇게 합니다. 이는 당연히 양분과 수분의 흡수를 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잎의 끝까지 물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물관(vessel)도 상대적으로 더 강력하게 만듭니다. 부족한 물을 최대한 잘 포착하고 고르게 전달하여 갈증을 견디려는 것이지요.

 

비료도 농약도 주지 않는 농사법을 쓰는 나의 밭은 아직 척박합니다. 그 밭에서는 지금 심어놓은 작물과 잡초(?)가 뒤섞여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함께 자라는 잡초의 대다수는 명아주라는 풀입니다. 신기한 것은 심어놓은 작물보다 야생의 풀인 명아주가 훨씬 더 잘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자가 다르니까, 야생이 홈그라운드인 녀석이니까 라고 치부하기에는 조금 더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녀석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살펴보니 대다수 명아주의 뿌리에는 하얀색의 균사덩어리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흙 냄새라고 부르는 향기를 만들어내는 세균이었습니다. 그 흰 균사의 이름을 알아보니 방선균이라고 합니다. 생장속도가 느린 재배 작물이나 다른 풀의 뿌리에는 육안으로 포착할 수 있는 균사가 없었습니다.

 

요컨대, 밭벼는 자신의 뿌리조직을 바꾸어 사막 같은 환경을 이깁니다. 명아주는 자신의 뿌리를 세균에게 내어주고 그들을 원군으로 삼아 영양분을 더욱 잘 섭취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지금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자꾸 막히고 엇갈려 제 자리만 뱅뱅 돌고 있다면 먼저 나의 발 아래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목들은 그럴 때면 가장 먼저 뿌리를 살핍니다. 그들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근원적 힘이 바로 발아래 뿌리에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사진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풀의 뿌리 세포. 뿌리에 자신을 도울 균의 집을 내주었다. 각각의 네모 칸은 세포, 위쪽의 세포를 지나는 검은 가닥이 세균의 집.

IP *.176.103.150

프로필 이미지
햇빛처럼
2009.06.11 09:44:30 *.190.122.223
오늘도 마음에 와 닿는글 잘 읽고 갑니다.
프로필 이미지
김용규
2009.06.19 22:49:39 *.229.133.52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해 보기는 처음입니다.
얼마나 경이로왔는지 모릅니다. ^^
프로필 이미지
김덕분
2009.06.11 10:15:03 *.82.96.59
음, 그러니까
진주를 만드는 조개처럼
제 고난이
저의 가장 큰  스승이 되는 것처럼
'제뿌리를 들여다 보는 게 삶' 이란 
참 기쁜 말씀 ... 감사합니다.
갑자기 숲에 가고 싶다는 푸른 아침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김덕분
2009.07.04 08:49:55 *.131.197.26
나무처럼 울다가
하늘을 오래 오래 바라봅니다.
그리고
크게 숨을 쉬면
숲이 마음까지 들어 와 앉습니다.
히히
갑자기 숲에 가고 싶으면
그렇게 '착각'에 듭니다.
프로필 이미지
김용규
2009.06.19 22:50:27 *.229.133.52
갑자기 숲에 가고 싶으실 땐 어쩌시는지요?
프로필 이미지
류성원
2009.06.11 13:39:53 *.55.46.38
선생님글에 처음 댓글 남깁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벼를 심어본 적이 한번도 없어서 굉장히 신기하기도 하고 그 속에 저런 오묘한  섭리가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제 발 밑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겠습니다.
나현아빠
프로필 이미지
김용규
2009.06.19 22:51:12 *.229.133.52
*^_^*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676 편지19:일상이라는 이름의 하루들 이한숙 2009.05.12 2768
3675 (19)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서지희 2009.05.13 2806
3674 두려움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 김용규 2009.05.14 3032
3673 골새앙바드레 봄처녀 구본형 2009.05.15 4184
3672 미소를 위한 기도 신종윤 2009.05.18 3234
3671 편지20:마음을 담지 않으면 감동이 없다 이한숙 2009.05.19 3545
3670 성실이 나를 이끈다 [1] 부지깽이 2009.05.25 3954
3669 솔로몬의 지혜 file [4] 신종윤 2009.05.25 4889
3668 인터뷰14:OSP 마스터 '제로':진정으로 살아보기 전에는 죽지 말아야 한다 file [1] 단경(소은) 2009.05.26 3646
3667 고무신을 신은 노무현 변호사 file [4] 2009.05.27 4640
3666 박새, 숲으로 날아가던 날 file [2] 김용규 2009.05.28 4224
3665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1] 신종윤 2009.06.01 3586
3664 편지22: 메신저, 양은냄비, 막내, 이어령, 인연... file [1] 단경(소은) 2009.06.02 4196
3663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화법, 침묵 file [8] 김용규 2009.06.04 3928
3662 삶의 슬픔에 기쁘게 참여하라 file [3] 구본형 2009.06.05 3754
3661 당신의 자명종은 몇 시에 맞춰져 있나요? [3] 신종윤 2009.06.08 3409
3660 편지23: 당신을 칭찬합니다. [12] 단경(소은) 2009.06.09 3963
3659 겸손한 그녀에게 배우는 것 [5] 지희 2009.06.10 2929
» 그대를 지탱하는 힘, 뿌리 file [7] 김용규 2009.06.11 3287
3657 신화 경영 -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며 file [7] 구본형 2009.06.12 3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