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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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에서는 식물을 ‘독립영양생물’이라고 부릅니다. 스스로 영양물질을 만들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생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지구로 스미는 빛과 물과 이산화탄소만으로 밥을 지어 자립적인 삶을 이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동물은 종속영양생물입니다. 모두 타자를 섭취함으로써 영양물질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풀면 이렇습니다. 빛과 물과 공기의 은혜로 풀이 자랍니다. 이제 소가 풀을 뜯어 삶을 잇고 우리는 풀(채소)과 소를 먹으면서 삶을 잇습니다. 따라서 초식과 육식을 불문한 모든 동물이 식물에 의존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숲을 만나고 숲에 얹혀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늘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 창조주는 왜 우리를 우리 아닌 생명들을 취해 살도록 설계했을까? 또 식물들은 어째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움직이는 생명들의 가해를 별 수 없이 수용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을까? 모든 생명이 독립영양생물이라면 지구의 생태계는 조금 더 평화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지구상의 생명 모두가 누군가가 누구를 수탈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하지 않은 신의 의도가 궁금했고 가끔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요즘처럼 밭의 작물을 지키고 거두기 위해서 밭에서 자라는 잡초를 뿌리 채 뽑아내야 하는 순간에는 마음이 더 불편해집니다. 특히 이제 한참 꽃을 피우고 있는 풀들을 뽑아내야 하는 순간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인간이라 해서 누구도 다른 생명이 품고 키우는 목적 앞에 무도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는,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더러 우리의 세포도 엽록소를 지니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삶을 영위하는 독립영양생물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망상(?) 끝에 나는 다시 그 질문을 하게 됩니다. 창조주는 왜 우리를 비롯한 동물들과 분해자들에게 무수한 다른 생명의 삶을 취하면서 살도록 만들었을까? 그 뜻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철학적으로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을 묻어두고 산지 오래되었다고 하던 그대지만, 나는 그대가 어떤 답을 품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대는 나의 대답도 궁금하겠지요?
나는 요사이 점심에 밭에 풀을 뽑고 온갖 채소를 뜯어 비빔밥을 즐겨 만들어먹습니다. 그러면서 갖게 된 나의 부실한 대답을 다음 주에 드리겠습니다. 우리 종속영양생물들끼리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알지 못함을 아무리 애둘러 말해도 역시 알지 못함일 뿐인 것 같습니다.
창조주의 뜻은 고사하고 내가 살고 있는 뜻도 모릅니다.
다른 생명의 죽음을 바탕으로 내가 삶을 이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죽음으로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자꾸 적으려니 강산에의 노래가 머리에 소용돌이 칩니다.
=
와 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 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 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 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 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 그라노 와와~ 와와~ 그래쌌노
머라 캐쌌노 머라 캐쌌노 니 (니 또 와그라노)
우짜라고요 내 우짜라고 내는 (내는 우짜란 말이고)
우짜라고 니 우짜라고 그라노 (니 단디 해라)
마 고마해라 니, 고마해라 니 (니 그라다 다친데이)
와 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 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 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 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 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 그라노 와와~ 와와~그래쌌노
머라 캐쌌노 머라 캐쌌노 니 (머라 캐쌌노, 머라 캐쌌노 니)
우짜라고요 내, 우짜라고 내는 (우짜라고요 내, 우짜라고 내는)
우짜라꼬 니, 우짜라고 그라노 (우짜라꼬 니, 우짜라고 그라노)
마 고마해라 니, 고마해라 니 (마 고마해라 니, 고마해라 니)
==

사실 저는 '안주고 안받기' 를 편하게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받을수록 그에 대해 보답을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마음에 쌓이니까요. 그런의미로 '독립영양생물'처럼 혼자서도 완전할수 있다면 정말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렇다면 저는 사람들과 교류하지도 않고 혼자만의 섬에 갖혀지내게 되겠지요.
인간의 삶이란 약육강식의 논리로 모든게 해석되어질수 없습니다.
다른생각을 취하여 내생명을 연명해간다는 의미보다는 '함께 살아라' 라는 깊은 뜻이 있는건 아닐까..조심스럽게 신의 뜻을 헤아려봅니다.

내가 신이라 해도 저는 세상을 이렇게 만들고 싶습니다.
자신의 발전소를 만들어서 자신의 에너지를 공급하며 살아가는 생명체와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생명체가 공존하기 때문에 다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봅니다. 어느 한쪽이 무성하게 번성할 수 없으며, 어느 한쪽의 멸로는 다른 한쪽이 살아갈 수 없는 지금의 세상은 불완전해 보이면서도 완벽해 보입니다.
저는 밥을 먹는 것이 힘겹습니다.
뭔가를 꼭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생명이기에, 그것을 끊임없이 해야하는 일이 무척이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점이 저를 돌아보게 하고 순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무한히 뻗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은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고, 그 한계를 잊지 않고 그것을 딛고 설 궁리를 하면서부터 다시 성장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른 생명의 힘을 취해야만 하는 존재들은 에너지 효율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효율성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아요.
어느날 만화책을 보다가 신은 왜 인간을 만들었는가? 신은 왜 인간을 사랑하는가하는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자신과 닮을 존재인 로봇을 만들려고 하면서 그 질문을 끊임없이 하죠. 뭔가를 만드는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해가니까요. 어떤 로봇을 만들고 싶은가하는 것은 인간이 어떠했으면 하는가와 별반 다르지 않죠.
지구상에는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생명체가 아주 많아요. 그런데 유독 인간만 신의 뜻을 거역하는 존재로 나와요. 오랫동안 돌봐야 한 개체로서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이 혼자 설 힘이 생기면 다른 존재를 파괴하는 일을 일삼는 인간은 어쩌면 신이 만든 에덴에서 그 세계를 파괴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어요. 그 만화책에서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인간은 불완전하고 어리석다고. 그래서, 그런데 그 점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고.
딱 하나의 형태만, 하나의 삶의 존재방식만을 가진 것들로 채워진 세상은 스스로 멸해버려요.
내가 만일 창조주가 된다면, 만일 그렇다면... 제가 만들어둔 세상이 오래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둔 그 상태에 머물지 않고 계속 변화해서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욕심도 생겨요. 그렇게 되게 만들고 싶군요.
그런 창조자 아니더라도 몇몇의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만들어진 그 순간의 그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여러 형태로 해석되고, 자신이 의도한 것과 혹은 의도하지 않았던 수많은 상징들이 살아나서 다시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보며 그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만든 것을 조금 떨어져서 기쁘게 바라보며 이야기하면서, 다시 또 뭔가를 만드러낼 궁리를 하죠.
이번에 또 무엇을 만들까.
창조자는 어쩌면 그래서 여러가지 형태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니 모든것은 창조주의 뜻입니다.
우리 몸을 소우주라고 하죠. 몸안에는 좋은 균과 나쁜균들이 혼재해서 균형을 이루고 있듯이, 좋은것도 필요하고 나쁜것도 필요하고 이모든것이 어루러져 완전한거 아니겠어요.
여러곳에서 내가 창조주라고 하내요. 처음에는 그럴리가 있나 했는데 하도 여러곳에서 그래서 내가 정말로 창조주인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심증은 가는데 확신이 안드내요.
내가 창조주이면 참 좋을것 같습니다. 좋음과 싫음, 죽음과 삶, 가난함과 부유함, 고통과즐거움을 다품고 자유로울것 같내요. 아마 머지 않아 그리 될겁니다.
그때되면 얘기해 줄께요. 내가 창조주인지를 어찌 알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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