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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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사랑하는 연인이 갑자기 이렇게 물어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넋 놓고 있다가 따귀라도 맞은 듯 가슴이 철렁하겠지요?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지만 답은 떠오르지 않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상대의 얼굴은 조금씩 굳어집니다. 어떻게 그것도 모를 수 있냐는 서운한 마음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흐를 지경입니다. 이쯤 되면 어디 구멍 속으로라도 숨고 싶어집니다. 미리 힌트를 주지 않은 연인이 살짝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연인의 사랑을 떠보듯 스스로의 의지를 시험합니다.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면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겠다고 자명종을 맞추기도 하고, 텔레비전과 냉장고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집에서 공부를 하는 무리한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번번히 실패를 경험하지요. 작은 실패가 반복되면 결국엔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깁니다. 그래서 작은 실패를 예방하는 것은 작은 성공을 이어가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런 실패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기는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고 싶다면 일찍 잠자리에 들면 됩니다. 그래도 어렵다면 자명종을 여러 개 맞춰서 이곳 저곳에 숨겨두는 것도 방법이 되겠네요. 매번 집에서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맥주 한 캔 꺼내 들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들기 일쑤라면 필요한 것들을 챙겨 가까운 도서관이나 카페로 향하는 것도 괜찮은 해결책이 될 듯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잔기술로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카이스트의 안철수 교수님은 의과대학 교수시절, 무려 8년 동안이나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3시간씩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일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교수님을 만나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쉽게 일어날 수 있었던 새벽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그래도 일단 일어나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정말로 즐거웠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새벽에 일어날 수 없다면, 텔레비전과 냉장고의 유혹을 이겨낼 수 없다면,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이 “No!”라면 고민은 그 자리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의지만으로 본성과 다투는 것은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타고난 본성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러면 의지가 본성을 돕게 될 것입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물어오는 연인에게 서운함을 토로하기 전에 그 혹은 그녀를 사랑하는 내 마음부터 더듬어봐야겠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어떻게 편지를 마무리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탁상용 달력에 아내가 그려둔 빨간색 동그라미가 보이네요. 맙소사! 내일이 아내를 만난 지 9년째 되는 날이군요. 하마터면 속옷바람으로 내쫓길 뻔 했습니다. 이 편지를 빌어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유진아, 처음 만났던 그 날보다 지금이 더 예뻐.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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