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2009년 7월 17일 07시 10분 등록

크레온: 군소리 늘어놓지마라. 짧게 말하라. 내 명령으로 그 일을 금한 것을 알고 있었느냐?

안티고네: 네. 그러나 그 법을 내게 내린 것은 신이 아니었고...정의의 신도 이 세상에 그런 법을 정해 놓지는 않았지요. 당신의 법이 확고한 하늘의 법을 넘어설 수 있을 만큼 강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하늘의 법은 어제 오늘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 시작을 알 수 없고 불멸입니다.

이 짧은 대화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입니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왕의 딸입니다. 오이디푸스가 죽고 왕위 계승전에서 그의 두 아들이 서로 싸웠는데 형인 폴리네이케스가 패했습니다. 그는 인근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조국 테베로 공격해 오는데, 이 싸움에서 두 아들이 서로 찔러 함께 죽게 됩니다. 계승권을 가진 두 아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외숙부인 크레온이 왕이 되었지요. 그리고 테베를 쳐들어 온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들판에 방치하고 아무도 거두지 말라 명령을 했습니다. 안티고네는 폴리네이케스의 여동생입니다. 그녀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다 잡혀오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 대화가 이어 집니다.

200971771030679.png
이 대화가 그렇게 유명한 이유는 인간의 법과 신의 법, 지금의 통치를 위한 현행법과 인간의 행복을 위한 영원한 법이 괴리되는 상황에서 법의 한계와 오용에 대한 인류의 고민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은 지켜야 하되 그 법이 독재적 통치자의 시녀 역할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 그 법은 법이로되 인간성을 거스리는 법, 즉 law against people 일 때, 인간은 어찌해야할까요 ? 그리스인들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안티고네는 자살을 합니다. 그녀의 연인인 크레온의 아들 하이먼은 그녀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다 스스로 칼 위에 엎어져 '시체 위에 또 하나의 시체를 겹쳐 뉘게' 됩니다. 그리고 하이먼의 어머니이며 크레온의 아내 역시 아들의 죽음 앞에서 자살하고 맙니다. 크레온은 관용이 없는 '쓸모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뉘우쳐 울부짖으며, 자신의 고통을 멈춰줄 '운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명' 인 죽음을 찬양합니다.

오늘 저는 이 이야기를 조금 다른 각도로 풀어 보려 합니다. 자기 혁명은 종종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안티고네처럼 '자기만의 법칙'을 따름으로서 세상의 일반적 법칙을 벗어나는 것이지요. 죄는 벌을 가져옵니다. 고독이라는 벌이지요. 다른 사람들이 다 가는 큰 길을 가는 대신 자신의 오솔 길을 찾아갈 때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바로 자기를 혁신하려는 사람들이 마주치게 되는 고통입니다. 그래서 자기혁명가는 자기 안에 신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신의 이름을 무어라 부르든 신의 법칙과 자신의 법칙을 동일시하는 것, 이것이 고독을 이기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홀로 신의 비호를 받으며 자신의 길을 갑니다. 그리고 성공 합니다. 그 후 자기혁명가는 사회로 귀환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때 비로소 '자신만의 법칙'이 세속을 위한 성공의 법칙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을 우리는 '영웅의 귀환'이라고 부릅니다. 성공을 사회와 더불어 나누는 것이지요.

그대는 외로움을 감내할 '자기만의 법칙'을 가지고 있는지요 ?

IP *.160.33.149

프로필 이미지
나경
2009.07.17 09:49:24 *.255.159.220
음... 댓글을 꼭 쓰고 싶어지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기원 전 5세기까지 우리를 이끌고 가서 이야기를 들려주시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09.07.17 10:37:34 *.251.224.83
음... 나경씨도 죄를 짓고 싶은가 보네요.^^
뼛속까지 외로움을감수하며   자기만의 법칙을 감수할 때
저 시절에는 신의 비호를 받는다고 여겼겠지만,
오늘날에는,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자기 길을 가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이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 중에는 먼저 세상으로 화려하게 귀환한 구선생님 같은 분도 계실 꺼고,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후반생을 내 생각의 증거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나같은 사람도 있을 꺼구요.
프로필 이미지
2009.07.17 12:16:58 *.71.76.251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중 하나인 안티고네,  아침에 이글을 반갑게 읽고 잘 안풀리고 있는 어떤 일에 대하여
마음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사부님 화집도 곧 보게 될 것 같은 예감. 매력적인 여인네가 자꾸 마음을 날게 합니다. ^!~
프로필 이미지
희산
2009.07.17 16:11:48 *.45.129.185
'자신만의 법칙'을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찾게 된다면 틀림없이 그 길을 가게 될 것 같다는 운명적 예감같은 느낌은 조금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오래전에 예언되어지고 이미 보여진, 하지만 마음의 암연 깊숙이 묻혀있는 데자뷰처럼요.

다만 그 때가 왔을 때 모두 다 버릴 수 있기를,  다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제 안에 생길 수 있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수희향
2009.07.17 17:34:04 *.233.20.235
사부님의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읽고 있는 중이어서 그런지
더욱 마음에 와 닿는 글입니다.

<저만의 법칙>... 조금씩 저 멀리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언제가 확실히 그 모습을 드러내면, 절대로 놓치지 않겠습니다... ^^**
프로필 이미지
정야
2009.07.18 06:56:50 *.12.20.193
변화를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철저히 규정해야만 새로운 오솔길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철저한 자아발견. 이것도 고독과 외로움이 해 낼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독의 고통보다 저를 방해하는 것이 두려움입니다.
선생님. 변화에는 원래 그런건가요? 저는 왜 이리 두려운거죠? 변화를 꿈꾸면서 이때까지 나 자신을 들여다 본 것은 모두 설레벌레 였다는 것을 안 이후부터 인것 같습니다. 진정한 저 자신과 마주한다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것인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듯 합니다.  이제는 쉽게 누구에게 변화하라고, 자신을 들여다 보라고 쉽게 권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고독과 싸워 자신만의 법칙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어떤 사람이다' 규정할 수만 있다면 자유로운 사람, 행복한 사람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번주에는 용기를 내어 두려움을 떨치고 고독과 마주해 보겠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