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가스와 신풍각 사장의 기업가 정신

<단종된 1톤 사륜 덤프 트럭 세레스의 위용>
어제는 서울에서 손님이 내려왔습니다. 이곳에서 구경할 수 없는 몇 가지 찬거리를 사오셨고, 함께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낙지볶음을 만들기 위해 가스렌지를 쓰던 중 가스가 떨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길이 험하여 배달하기 어려운 곳에 살고 있으므로 애초부터 두 개의 가스통을 준비해서 쓰는데, 두 계절을 쓰자 바닥이 난 것입니다. 왕복 10KM는 족히 될 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칠성가스에 전화를 했습니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어둠만 내려도 웬만한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난감한 주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 큰 걱정과 미안함은 얼마 전 내린 폭우로 길이 많이 파여 이곳까지 올라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배달 주문을 하며 미안해 하자, 칠성가스 사장님은 “어떻게 하겠어요? 산 속에서 밥하다가 가스가 떨어졌으니 가야지요.”라고 전화를 받습니다. 30분쯤 지나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옵니다. 칠성가스 사장님이셨습니다. 산방 도착 200m 지점에서 길이 험해 차가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도가도 못한 채, 가스 통을 잔뜩 싣고 다니는 차의 무게가 길의 경사에 얹혀 자꾸 미끄러지는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다급하게 나의 트럭 ‘세레스’에 견인용 밧줄을 싣고 내려갔습니다. 차는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위기상태로 경사지 턱에 걸려 있었습니다. 밧줄을 걸었습니다. 나의 차는 4륜 구동 기어를 넣고 사장님의 차도 전진 기어를 넣어 견인을 시도했습니다. 가스배달 차량은 꿈쩍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견인 밧줄이 툭 하고 끊어졌습니다. 더 두꺼운 밧줄을 걸고 다시 시도하자 배달 차가 움직입니다. 그렇게 200m의 거리를 끌어 올려 가스 통 두 개를 모두 교체했습니다.
냉커피 한 잔을 타드리며 가격을 묻자 56,000원이라고 합니다. 한 통에 28,000원인 것입니다. 너무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 8개월을 가스 걱정 없이 쓸 텐데…… 6만원을 드리고 거스름돈을 돌려받지 않겠다 했습니다. 이미 산방은 어둠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험한 곳까지 와주셔서 미안하고 고맙다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자 사장님 하시는 말씀. “나만 고생했나요? 함께 고생했지요.” 합니다. 커피 잘 마셨다며 조심조심 내려가셨고 나와 손님은 낙지볶음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손님이 떠나고 다시 홀로 남은 시간, 나는 칠성가스 사장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였다면 나는 어땠을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을 닫을 시간에 걸려온 주문 전화와 그곳이 얼마나 배달하기 험한 곳인지를 아는 이, 기껏해야 1년에 돈 10만 원어치 매상을 올려주는 고객, 배달 중 닥친 다급한 위험과 돌아가기도 만만찮은 길…… 그대가 가스 집 사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난 해 나는 ‘신풍각’이라는 자장면 집으로부터 점심을 배달 받아 먹어가며 이곳에 산방을 지었습니다. 이 멀고 험한 곳까지 자장면을 배달해주겠다고 했을 때 나는 감격했습니다. 그릇에 천 원씩 더 드리겠다 했지만 그는 거절하였습니다. “오토바이 기름값 계산하고 험한 길 생각하면 남는 것도 없을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배달을 해주실 생각을 하셔요?” 하자, “먹어야 집도 짓지요” 했습니다. 그대가 그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이 두 분이 이 험하고 부실한 고객을 대하는 모습에서 기업가 정신을 보고, 또한 지역 공동체를 생각하는 상인의 정신을 배웁니다. 이 사회에 이러한 정신을 가진 상인과 기업가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한결 살만하지 않을까요? 이런 기업가 정신 속에서 자본주의에 사는 희망을 찾는 저는 너무 순진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