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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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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3일 01시 41분 등록

사진 007.jpg


달개비가 그 푸른 빛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노란색 달맞이꽃이 피어나자, 이윽고 보라빛 물봉선도 군락으로 피어납니다. 왕고들빼기가 우유빛 제 꽃을 한창 피워대는 지금 어느새 산방의 밤도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실 창을 모두 닫고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 잠자리가 편안해진 지 이미 보름이 넘었습니다. 오늘은 김장용 배추와 무우, 쪽파를 심어보려 합니다.

 

올해는 꽃도 보고 이것저것 농사도 짓는 여유를 누리고 있지만, 지난 해 이 즈음 나는 이 숲에 오두막을 짓느라 바빴습니다. 나의 오두막 속에는 투박한 나의 지향이 담겨 있습니다. ‘살고자 하는 그곳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재료로 집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어느 흙 건축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지은 열세 평 반 오두막은 여덟 개의 흙 기둥이 주된 구조물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뒷밭에서 캐낸 돌로 기초를 쌓고 그 위에 다시 밭 흙을 다져 40Cm 두께의 흙 벽 여덟 개를 기둥으로 세웠습니다. 그들이 지붕을 떠받드는 구조체입니다. 나도, 타인들도 모두 의심했습니다. 과연 밭에 흙을 퍼 담아 다지면 그게 뭉쳐지고 굳을 수 있을까? 설령 뭉쳐지고 굳는다 해도 정말 그 흙 기둥이 나무처럼 단단한 구조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 집 안에서 한 겨울과 한 여름을 살아보니 놀랍게도 흙은 돌덩이처럼 단단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딸 녀석은 이 곳 오두막에서 잘 때 가장 깊고 편안하게 잠을 자게 된다고 말합니다.

 

토양학에서는 그 입자의 크기에 따라 흙을 여러 가지로 구분합니다. 대략 먼지보다 크지만 알갱이가 거의 잡히지 않는 곱고 고운 흙이면 점토, 깨알 같은 크기 전후로 알갱이가 잡히면 모래, 그 보다 큰 녀석들은 자갈, 바위…… 뭐 이런 식입니다. 집을 지어보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는데, 점토만으로는, 혹은 모래나 자갈, 바위 만으로는 뭉쳐서 굳힐 수가 없습니다. 그들 각각을 단단하게 결합하는 적절한 상호작용이 존재해야 비로소 그들이 결합되고 집의 기둥 노릇을 하는 구조체가 될 수 있습니다. 모래나 자갈이 점토에 둘러싸여야 하고 약간의 물도 결합되어야 하며 뜨거운 햇빛과 바람에 건조되어야 그들이 흙 기둥 혹은 흙 벽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요즘 지난 해, 흙 집 오두막을 어렵게 지으면서 느꼈던 개별체들의 결합과 상호작용이 갖는 힘과 아름다움이 이 각박한 세상을 개선할 거의 유일한 대안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대다수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성장의 법칙과 사회의 지배논리는 모래알 혹은 자갈 개체의 성장논리입니다. 따지고 보면 스스로를 갈고 닦아 타인보다 빛나고 견고해지라는 논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전략론에 담긴 철학들의 핵심도 이 논리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이야기 속에서 희망을 보지 못합니다. 나의 오두막과 첫 책이 그러했듯, 앞으로도 내가 쓸 글과 책과 살아갈 삶은 모래알을 뭉쳐 기둥을 세우려는 시도일 것입니다. 시류를 따르지 않아 더러 회의스럽고 또한 얼마간 힘겨울지라도 나는 그렇게 할 계획입니다. 딸 아이가 고백한 것처럼 그렇게 만든 집 속에서 가장 편안히 자듯, 그 계획 속에 나와 이웃을 위한 참된 평화가 살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의 삶이나 글, 전략과 철학에도 이웃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개별 생명체들의 성장을 넘어 더불어 풍요로울 줄 아는 숲과 같은 지혜와 전략과 사랑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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